찬란했던 그들의 추억이 우리의 역사

서호초교 60년사-잃어버린 추억을 찾아서

기존의 시간 나열식 기록 탈피해

동문들의 생생한 구술과 사진으로

지역 공동체·수원시 변화 한눈에

“6ㆍ25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못한 1954년.

어느학교에서도 받으려 하지않던 앙카라고아원생을 수용하기위해 서둔동, 평동 등에 거주하던 매산초, 세류초교생을 전학시켜 설립한 우리모교는 개교후 1년 넘도록 교사는 물론 책걸상도 없이 미군이 쓰던 빵공장 건물 마루바닥에 엎드려 공부했고, 점심을 굶은 고아원생들의입장을 생각해 긴긴 여름날에도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고, 점심시간이면 학교운동장 끝에 있는 잠업시험장 뽕나무밭으로 앞다투어 달려가 오디로 배를 채우고 시꺼멓게 물든 얼굴을 서호천에서 미역감으며….”

서호초등학교 제2회 졸업생인 김진표 전 국회의원의 모교에 대한 기억이다. 김 전 의원은 <서호초등학교 60년사-읽어버린 추억을 찾아서> 의 축사를 통해 개인의, 초등학교의, 수원의, 한국의 역사를 읊조렸다.

그 생생한 기록은 읽는 이의 머릿 속에 뿌연 흑백 사진을 띄우며, 가난했지만 함께하기에 더 찬란했던 그 순간의 빛으로 마음을 파고든다. 이처럼 한 사람의 기억 한 조각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들추고, 또 전부가 된다.

수원의 서호초등학교 총동문회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모교의 개교 60년을 기념해 <서호초등학교 60년사-읽어버린 추억을 찾아서> 를 발간하면서 기존의 시간순 나열식 기록 대신 학교를 둘러싼 지역 공동체와 수원시의 변화를 사진과 생생한 구술을 적었다.

책 구성에서도 기획 의도가 드러난다. 1부 화보-사진으로 본 서호 60년, 2부 서호초등학교 60년과 서둔동의 역사, 3부 서호초등학교 동문들의 이야기 : 학교와 마을의 추억 등으로 구성했다. 여느 기념책자와 차별화된 제목이다. 내용 역시 동문이 아닌 누구나 재미를 느끼고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새마을운동 초창기 서둔동은 농촌진흥청을 기반으로 새마을운동의 가장 큰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곳이었다. 때문에 지난 70년대 권농일 행사, 모심기 행사, 벼베기 행사, 새마을 행사 등이 있을 때면 대통령이 빠지지 않고 들러 갔던 곳이 서둔벌이다. 수원의 대표 음식 왕갈비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이런 행사에 참여하러 왔던 박정희 대통령이 ‘화춘옥’에서 식사를 하고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p.173)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고 등장인물이 많아지다가 다시 적어지는 화보 부분은 시대 변화를 적확하게 드러낸다. 1940년대 수원에서 출발해 이제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SK(구 선경) 등 기업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한다. 일본의 대륙 침략 야욕에 설치된 철길과 기차를 비롯해 고속도로와 영화 <빨간 마후라> 촬영장이었던 비행장 등 수원의 교통 역사도 다뤘다.

특히 서호초 동문이 문답 형식으로 말하는 그대로 적은 구술사 부분(3부)은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구수하고 정감있다. 삼형제가 모두 서호초 졸업생인 최다 동문 가족부터 총동문회장, 육성회장, 동창회장, 학부모회 등 서호초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보석같은 이야기가 그득하다. 이처럼 서호초의 60년사는 대중적인 ‘우리의 이야기’로 구성해 유사 기념책자들의 롤모델이 될 만한다.

이와 관련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유문종 서호초 총동문회 총무국장은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각 학교의 총동문회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번 기념책자는 이 같은 시대흐름을 반영해 새로운 감각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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