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동 관장의 대한민국 박물관 41곳 여행기 담아
‘1천관 박물관ㆍ미술관 시대’가 코앞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2014년 전국문화시설 총람>에 따르면 전국의 등록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는 950여 개에 달한다.
급증한 박물관의 숫자만큼 내적 기능 변화도 엄청나다. 유물 연구ㆍ보존ㆍ전시에 주력했던 박물관은 이제 그 유물을 토대로 활발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복합문화예술기관을 지향한다. 이제 “박물관 기행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하지만 누구나 같은 감동을 받을 순 없다. “수없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야누스적인 존재인 박물관 소장품”은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고 상상하는 만큼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좀 더 친숙하게, 좀 더 쉽게 박물관과 유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 근대 박물관의 산증인 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 관장이 최근 펴낸 <(대한민국)박물관 기행>(BM책문)이 안내서가 될 만하다.
저자 배기동은 서울대에서 고고인류학을 전공하고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년 넘게 전 세계 구석기 교과서를 뒤바꾼 전곡리 구석기유적을 발굴, 조사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전곡선사박물관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장, 국제박물관협회(ICOM) 한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관록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박물관 대표선수는 어렵게 느껴지는 박물관을 좀 더 친숙하게, 무심코 지나쳤던 박물관과 유물의 가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책은 8개 테마의 41곳 박물관으로의 기행을 이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국공립 또는 대규모 박물관만 ‘편식’하는 가운데 중소 규모의 테마박물관과 그 안의 놀랄만한 유물을 소개해 흥미롭다.
10가지 국가 보물을 간직한 출판박물관에서 종이의 향기에 마음껏 취하도록 하고, 미국인도 놀라워하는 에디슨의 발명품을 보여주고, 인간을 제물로 바칠 때 심장을 파낸 마야의 칼을 마주하며 서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 목판은 일본에서 발견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목판으로 차를 달이는 일본식 화로(이로리)를 만들었던 거지요. 그래서 네모상자 형태가 되었답니다.” ‘이 귀중한 것으로 어떻게 차화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남의 문화재를 멸실하여 자신들의 즐거움을 채우다니….’
지금도 그때가 떠오르는 듯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 관장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 사들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나요?” “긴 줄다리기 끝에 현금을 싸들고 가서 담판을 했지요. 부르는 값을 다 준 셈이지요.”」-p.512
치악산고판화박물관장이 일본에서 <오륜행실도> 목판을 얻기 위해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수집한 사연에서는 분노가 끓어 오른다. 신안 보물선에서 동아시아 국보급 도자기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손발에 땀이 날 것 마냥 긴장과 흥분이 교차한다. 오륜행실도>
이처럼 저자는 전국의 보석같은 박물관에서 만난 귀한 유물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탐정처럼 추적하며 흥미롭게 전달한다. 여기에 그의 에피소드를 더해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게 서술했다.
한편 이 책으로 일반인에게 자상하게 박물관 관람을 독려하는 저자는 박물관을 향해선 날카로운 쓴소리를 남겼다. “박물관은 꼭 교육이 아니더라도 관람객이 박물관에서 즐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값 1만9천800원
류설아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