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어느 날. 차범근 감독이 사무실에 들렀다. 정규리그 우승에 대한 인사차 방문이었다. 평소 말수가 적기로 유명한 그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젊은 시절 ‘건방지다’는 평이 따라다녔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차 감독이 꽤 긴 시간을 사무실에 머물렀다. 함께 방문했던 삼성 블루윙즈 오근영 당시 단장은 그날의 모습을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지금도 증언한다. ▶“분데스리가에서 대단했잖아요. 98골을 넣었는데 PK는 한 번도 안 차셨죠. 각도가 없는 곳에서의 골도 여러 번 있었고”. 덕담(?)으로 던진 이 말에 차 감독이 윗옷 단추를 풀어 제쳤다. “아니, 축구를 좀 아시는 거 같은데요”. 이어 ‘모두들 내가 독일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는 얘기부터 축구 인생에 대한 자랑을 이어갔다. “차범
근이냐 김주성이냐는 경쟁도 있었죠”라는 질문에는 익살스럽게 흥분까지 했다. “주성이는 나한테 안 되지. 무슨 얘기를”. ▶“정치를 하실 생각은 없나요”라고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정치 유혹이 왜 없었겠어요. 여러번 있었죠. 안 해요. 축구인이 왜 정치를 합니까”. 실제로 그랬다. 1992년 1월 8일자 신문에 실린 기사다. ‘차범근 프로축구 현대 감독이 14대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정주영 전 현대 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난해 말 신당 입당과 총선 출마를 권유받았다…이에 앞서 민주당으로부터도 공천을 전제로 입당 권유를 받았으나 거절한 바 있다’. 최고라는 자부심과 축구가 전부라는 고집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기억이다. ▶그 차범근이 검색 순위 상위로 돌아왔다. 아들 차두리의 ‘폭풍 드리블’ 이후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차두리는 60m를 치고 달려 골을 만들었다. 경기 뒤 차범근이 “야, 내가 하던 걸 네가 하냐”며 좋아했다고 한다. 사실 차범근의 전성 시절 30~50m 드리블은 흔한 일이었다. 동영상 속 차범근의 질주는 차두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래서였을까. 차두리를 통해 차범근을 추억하려는 검색어가 인터넷을 달궜다. ‘차범근과 차두리 허벅지’ ‘차범근 전성기’…. ▶한국 축구가 27년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올랐다. 모처럼 국민들이 웃고 있다. 그 기쁨의 중심에 차씨 부자가 있다. 35세 아들은 나이를 잊고 질주한다. 62세 아버지는 추억을 담아 응원한다. 그리그 그 아들이 31일 마지막 경기를 한다. 1972년 아버지부터 이어온 차씨 부자의 국가대표 역사가 이제 막을 내린다. 국민을 행복하게 했던 43년이다. 모두들 고마워한다. 결승전 결과는 상관없다. 차씨 부자의 외길 인생을 향한 기립박수는 이미 준비돼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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