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한완상 칼럼] 을미년, 乙들의 소망
오피니언 한완상 칼럼

[한완상 칼럼] 을미년, 乙들의 소망

120년전 갑오년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그때 부패한 갑들이 침략적 외세의 갑들과 결탁하여 그 혁명을 좌절시켰다. 그 후 한반도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탐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꼭 10년 뒤인 1904년 갑신년에는 친일 매국노들의 갑질로 외교권이 강탈당했고, 5년 후 마침내 민족과 국가는 일본 식민지로 떨어졌다. 이때 이완용 등의 갑질로 경술국치를 겪게 되었고, 36년간의 긴 고통이 우리민족을 괴롭혔다.

1945년 을유년 8월에 이 땅의 을들은 해방과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식민지 시대의 고통보다 더 심한 민족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열정 3년과 냉정 60여년을 겪으며 이제 2015년 을미년을 맞고 있다. 을유년에서 을미년에 이르는 70년간 이 땅 을들의 고통은 참으로 억울하고 부당했다. 그래서 올해를 맞는 우리들의 마음은 더욱 착잡하다. 그만큼 우리들의 소망은 절박할 수밖에 없다.

을미년은 문자 그대로 을들에게는 희망과 용기의 해가 되어야 하며, 미생(未生)들과 삼포세대에겐 희망의 실현으로 기뻐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그들의 힘이 더욱 조직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갑질하는 이 땅의 표준세력과 적자(適者)세력들의 횡포는 사라져야 한다.

을만이 아니라 병(丙)과 정(丁) 역시 사람다운 존엄한 대접을 받는 새해가 되어야 한다. 이 땅의 착한 꼴찌들인 선정이 나라의 주인으로 늠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개혁이 꼭 이뤄져야 한다.

이런 소망을 가슴 깊이 담으면서 지난 갑오년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월호 비극에서 드러난 갑들의 탐욕과 그들의 무능이 을미년에도 지속하는 한 우리의 오늘은 계속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고, 우리의 내일은 더욱 절망적인 위협이 될 터이다.

이 땅의 갑들이 정부조직이나 행정체계 개편을 통한, 이른 바 국가개조만으로 그 못된 갑질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날 잘못된 관례를 손보는 것만으로, 법률체계 한 두 개 바꾸는 일로 갑질이 줄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편법주의적 성장정책, 신자유주의적 큰시장정책, 군사권위주의적 큰 정부 정책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못된 갑질은 줄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힘은 공익적이고 공공적인 한에서 커져야 하고, 시장의 그 힘은 공정거래를 담보해 내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

국가공권력이 을에게는 무섭고, 갑에게는 아첨할 때 그 국가의 힘은 가차 없이 제한되어야 한다. 시장의 적자세력이 약자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할 때, 국가는 그들에게 가차 없는 규제를 해야 한다. 무전유죄의 현실이 강화되는 비극은 반드시 극복해내야 한다. 이런 뜻에서 재벌들의 사면조치는 그들의 갑질을 촉구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지난날 한강의 기적을 계속 예찬하는 일은 을들과 정들의 힘들었던 수고를 업신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을미년에는 정부의 공공성과 시장의 공정성이 파격적으로 신장되어야 한다. 세월호의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을미년은 국제적으로 을로 취급당해 억울하게 분단된 우리민족에게 평화가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 되는 해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단호한 주장 그대로 올해는 한반도가 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간 남북한 관계악화로 정치적 이득을 챙겨온 이 땅의 이념적 갑들이 더 이상 그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갑질횡포를 스스로 그만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념적 갑질, 메카시적 공격이 이 땅의 을들과 정들의 고통을 너무 심화 확대시켜 왔기 때문이다.

착한 꼴찌인 선정들이 진정 해방과 광복을 누릴 수 있는 통일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를테면, 남녘의 중소기업들이 북녘의 인프라구축에 신나게 참여하여 남북 모두가 상승하고 상생하는 평화통일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

최근 미국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려는 우리들의 평화결의에 갑질하듯 심술부리고 있으나 우리는 의연하게 평화선진국의 민주저력을 보여 주면서 한반도 평화를 통한 동북아시아의 번영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것이 을미년 을들의 꿈이요, 또한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되어야 한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