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부 시절 금서 조치에도 ‘100만부’ 가까이 판매된 시대의 고전 ‘노동의 새벽’ 출간 30돌 맞아 개정판 나와
1984년, 한 공장 노동자의 손에서 한 문학평론가의 손으로 신문 하나가 건네졌다. 그 신문지 사이에서, 얇은 습자지 위에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 쓴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군사독재 치하의 엄혹한 시절, 한 편 한 편의 시는 가슴에 불을 지피는 충격이었고 눈물이었고 위험한 그 무엇이었다.
시인은 자신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며 사라졌다. 그 시들이 묶여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했고, 그것이 바로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었다.
문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노동의 새벽’이 던진 파장은 넓고 컸다. 문단은 경악했다. 그의 시는 지식인 시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이미 도달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목소리로, 군홧발로 짓밟혀온 1천만 노동자의 살아있는 실체의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잊혀진 존재’였던 노동자가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 걸어 나오는 시대적 예감이었다. 이로써 ‘노동의 새벽’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하나의 커다란 지침이 되기도 했다.
저자 박노해는 이 시집을 세상에 발표하고 곧바로 위험 인물로 떠올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각종 시국 사건의 배후 인물로 추적당했다. 그는 ‘불순한’ 노동자, ‘불온한’ 시인, ‘위험한’ 혁명가였다.
‘노동의 새벽’은 단일 시집으로서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이라는 기록도 있다. 42편의 시 가운데 ‘가리봉시장’, ‘지문을 부른다’, ‘시다의 꿈’, ‘진짜 노동자’, ‘노동의 새벽’, ‘바겐세일’ 등 20여 편의 시들이 80년대 민중가요로 작곡돼 노래의 몸을 입고 울려 퍼졌다.
1984년, 군사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시대의 고전’인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아 개정판이 출간됐다.
특히 이번 개정판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표지의 ‘실크 인쇄’는 오랜 인쇄 기법 중 하나로, 기계가 아닌 장인적 노동으로 완성된 것이다. 또한 1984년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으며, 세월이 흘러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냈다. 컴퓨터 글자가 아닌, 저마다 다 다른 ‘살아있는 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값 1만2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