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논리에 또 희생강요” 성난 민심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정부는 지난 10월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동두천 내 주둔한 ‘미2사단 210포병여단’에 잔류 결정을 내렸다.
정부가 주민과 약속했던 미군 기지 평택 이전 계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반환될 미군 공여지 개발 계획 역시 무위(無違)로 돌아갔다. 지역 민심은 요동쳤다. ‘실망’은 금새 ‘분노’로 바뀌었다.
시는 물론 지역 내 시민단체까지 나서 미군 잔류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부는 지역 주민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어 갈등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63년간 주둔… ‘기지촌 오명’ 경제적·정신적 피해 막심
동두천 미군 기지의 역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보병 24사단’이 전선 사수를 위해 임시 캠프를 설치한 것이 시초가 됐다. 그로부터 ‘미3사단’, ‘미25사단’, ‘미7사단’이 차례로 주둔하며 현재의 ‘미2사단’까지 이어졌다.
63년의 세월, 동두천 현대사는 고스란히 ‘주한 미군’의 역사가 됐다. 동두천의 미군 공여지는 ‘캠프 케이시’(Camp Casey), ‘캠프 하비’(Camp Hovey) 등 전체면적의 42.4%(40.63㎢)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의 5배가까이가 ‘미군’의 땅으로 묶인 셈이다.
이로인한 주민피해는 상당하다. 미군 공여지로 인한 종합토지세 등 세수손실액만 연간 226억원에 육박한다. 손실폭은 지역발전 저해로 이어지며 동두천 주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에 ‘정신적’피해는 덤이다. ‘기지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열악한 교육환경과 군사훈련 등은 각종 소음과 교통체증, 수면장애 등을 유발하고 있다.
‘국가안보’ 명분… 정부, “조금만 더 ~”
주둔의 명분은 명확했다. ‘국가안보’. 하지만 그에 상응한 댓가는 없었다. 지난 2006년 3월 지역 주민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주한미군공여구역주변지역등지원특별법’이 제정됐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법 제정 과정에서 지원 대상 구역이 전국 13개 시·도, 65개 시·군·구로 확대돼 매칭펀드 방식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지방비 부담조차 어려운 동두천시 상황으로는 실효성이 없었다.
미군이 주둔한 서울 용산과 경기 평택에 각각 10조원, 18조8천억원의 개발비용을 정부가 부담한 것과 사뭇 다르다. 이에 따라 동두천시는 반세기에 걸친 미군주둔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위해 특별법 제정 등 국가차원의 지원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그러다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2015년 계획된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마저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동두천시와 시민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됐다. 불과 한달전까지 ‘잔류를 없을 것’이라 호언하던 정부였다. 동두천시와 주민의 ‘분노’는 당연한 결과였다.
미군 잔류 피해에 대한 ‘현실적 보상’ 요구
지역의 요구는 단순했다. 미군 주둔이 동두천 지역 발전의 장애로 작용한 만큼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해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방적 ‘잔류 반대’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동두천시는 미군주둔이 궁극적인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는 만큼 또다시 ‘희생’할 각오도 돼 있다는 입장이다.
또 지난 반세기, 자의에 관계없이 미군과 함께 미군 시대를 열어가면서 지역경제에 미친 긍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익 공유’다. 미군주둔으로 인해 한반도 내 ‘전쟁억제력’이 강화된 만큼, 이로인해 발생한 경제적 이익을 주둔 지역과 나누자는 것이다.
‘주한미군공여구역주변지역등지원특별법’이 있지만 현실성과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법 개정’이나 ‘동두천지역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는 주장이다.
동두천시의 강경입장에도 정부의 대처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국방부 장관 면담때에도 ‘힘쓰겠다’, ‘노력하겠다’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에 동두천시는 올 연말까지 시한을 정해두고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을 시 극단적인 투쟁을 예고해 물리적 충돌도 우려되고 있다.
글 _ 송진의·박광수 기자 사진 _ 동두천시청·연합뉴스 제공
[Interview] 오세창 동두천시장
“생존위한 절규… 정부, 상생의 결단 필요”
“우리는 반미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또 미군 잔류 반대만을 외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동두천 시민이 앞으로 먹고 살아가야할 생존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오세창 동두천시장은 투쟁의 성격부터 명확히했다. ‘반미’나 ‘종북’이라는 이념의 잣대가 덧대질 경우 ‘생존’이라는 본질적 요구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 시장은 확고하다.
반세기 넘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해 온 만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1월 5일 ‘미2사단’ 정문에서 가진 궐기대회에서 오 시장은 머리에 직접 ‘띠’를 두르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사실상 이번 문제 해결에 시정운영의 사활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건 아니다. 오 시장은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인만큼 현실적인 ‘보상안’이 전제될 경우 ‘미군잔류’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 플랜도 가지고 있다. 현행 ‘한미군공여구역주변구역등특별법’에 명시된 ‘매칭펀드’ 등의 독소조항 개정과 주둔면적과 주둔인원에 따른 차등지원 등을 정부측에 요구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오 시장은 1차적으로 동두천시와 정부간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책 기구 설립 등의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오 시장은 “미군 문제는 동두천의 운명과 미래가 걸린 일인만큼 올 연말까지 우리의 요구가 수용될 수 있도록 투쟁의 수위를 높여 갈 것”이라며 “이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과 이해, 그리고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_ 송진의·박광수 기자 사진 _ 동두천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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