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출산 정책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 높은 사회적 관심 속에서 수많은 정책이 도입됐으나, 출산율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는 지난 2003년에 1.18명이었는데, 2013년에는 1.19명 수준을 기록해 전혀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분명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과연 ‘저출산 정책’의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제시된 저출산 대책은 주로 임신, 출산, 영유아(0~5세) 자녀의 양육 시기에 걸친 가족에 대한 지원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영유아 보육 및 유아교육 지원의 비중이 가장 커, 올해 저출산 분야 예산의 71%인 10조6천억원의 예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는 영유아 1인당 예산으로 환산하면 384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자녀 1인당 양육비는 영유아기 동안 6천750만원으로 가구 입장에서는 훨씬 더 큰 비용이 든다. 더욱이 가구의 자녀 양육은 영유아기 이후에도 계속된다. 또 영유아 시기보다 초등학교(7천596만원), 중고등학교(8천842만원), 대학교(7천709만원) 시기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보육 및 유아교육 지원 정책을 저출산 대책으로 등치시키는 경향은 정부의 사업 분류 기준에 의한 것으로 이는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사고다. 가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출생 후 22세까지 평균 자녀 양육비가 2003년의 1억9천703만원에서 2012년의 3억896만원으로 57% 증가했다. 자녀의 뒷바라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녀가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잡을 때까지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2004년의 45.1%에서 2013년의 39.7%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즉, 자녀가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데 예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고 있다.
더 나아가 고용 문제는 산업 구조와 무관할 수 없다. 청년층 고용난이 더 심화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학력 구직자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경제력 격차를 일정 부분 반영한다.
예를 들면, 상품 시장에서의 갑을 관계는 두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근무 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중 종사자 수가 300인 이상의 사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 비율은 8.6%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다수 일자리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 일은 일자리의 질 제고를 통한 고용 창출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강조하는 시장의 효율성은 공급자가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발생한다. 정책의 수요자인 개별 가구의 입장에서 실질적인 출산 정책에는 보육지원뿐만 아니라,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경감 방안 및 청년 고용 증진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결국 지난 2000년대 이후 출산 장려의 실패는 ‘저출산 정책’, ‘교육 정책’, ‘노동 정책’, ‘산업 정책’ 등의 총체적인 정책 실패로 해석해야 한다.
개별 가구 입장에서 출산의 문제는 자녀의 일생에 걸친 삶의 질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진심으로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반성한다면, 시야를 ‘출산 및 영유아기’에서 생애 전체로 넓혀 국민이 행복한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김정호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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