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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희망세상] 사색의 계절에
오피니언 차동엽 신부의 희망세상

[차동엽 신부의 희망세상] 사색의 계절에

가을이 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철학자? 스스로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이도 있을 터다. 허나 사실이다. 철학이 무엇인가? 철학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하여 물음을 던지고 보편적인 답을 추구하는 사유과정을 가리킨다. 세상에 물음을 던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비록 온전치는 않아도 ‘답’의 실루엣 정도는 누구든지 어림으로 가늠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철학자의 신원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는 셈이라는 얘기다. 모르긴 모르되 흔히 말하는 ‘개똥철학’이라는 말도 이런 취지를 가리키는 해학적 표현이라 여겨진다.

가을은 깊어 가는데, 나의 사색도 깊어가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돌이켜 보건대, 사색에도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이 아니라면 멘토라도 좋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고마운 추억이 있다.

내가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에서 박사학위 통과 시험을 치르던 당시의 이야기다. 나는 학위 취득을 위해 전공서적 30여권을 깨알 같은 글씨로 요약해 가며 빈틈없이 준비하였다. 구두시험 현장에서 내 논문지도 교수이며 시험 주심이기도 했던 쮸레너(P.M. Zulehner) 교수가 던진 질문은 그에 비해 의외로 너무도 파격이었다. 기억이 다 나지는 않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 한 단어로 말해 보시오.”

“오늘날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상들의 배후에 작용하고 있는 결정적인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단 한 단어로 말해 보시오.”

“…….”

당황스럽기도 하고 혼돈스럽기도 한 이 질문에 나는 마치 ‘스무고개’ 풀기를 하듯이 진땀을 빼며 답을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답의 언저리에 근접할 때마다 교수님은 보조 질문을 던져 주면서 도와주었다. 단 한 번에 만족스런 답을 제시하지 못한 나였던지라 의당 교수님의 얼굴을 살필 수밖에 없었지만, 교수님의 표정은 대만족이었다.

어차피 교수님은 정해진 답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지식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유법의 학습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은 오직 제자 스스로가 섭취하고 소화한 초간단 핵심 및 그의 학문적 내공을 점검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회상해 보니 교수님의 질문은 시험이 아니라 마지막 강의였던 셈이다. 그 수업의 추억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되어 오늘도 내 가슴에서 고동치고 있다.

“늘 한 단어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라. 많이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인자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물으라.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그렇다.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야말로 으뜸 지혜라 할 것이다. 고로 현상의 표리(表裏), 사안의 경중(輕重), 순서의 선후(先後)를 파악하는 것이 무릇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무수한 곁다리들을 가져다 놓고 이러쿵저러쿵 해봤자 허접할 따름이다. 그 곁다리들을 헤치고 핵심 하나만 분명히 잡으면 어떤 난제건 해결의 실마리가 술술 풀리게 마련 아닌가.

용어들이 거창하니까 방금의 얘기가 저잣거리 일상과는 거리가 먼 학술적 진술로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랬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한 단어’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은 매일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데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찰력, 혜안, 촌철살인……. 이런 말들이 왜 필요한가. 얼키설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인생만사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요긴한 도움이 그것들에서 오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날들. 삼삼오오, 또는 단체로 단풍구경만 나다니지 말고, 쓸쓸히 낙엽이 깔린 길을 걸어보자. 홀로 부질없는 사색에 잠겨보자. 실속 없어도 간만에 의미 한 두 개 쯤은 주울 수 있을 테니까.

차동엽 미래사목연구소장•인천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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