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관찰력으로 ‘生의 뒷면’ 노래하다

손택수 시인 ‘아버지의 유언’ 시집으로 묶어

“곱씹고 곱씹은 아버지의 유언 한줄로 시집을 묶는다”

손택수(45) 시인이 네번째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刊)를 펴내면서 한 말이다.

4년 만에 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예민한 감각과 세밀한 관찰력으로 생의 뒷면을 차분히 응시하며 곡진한 삶의 진경을 노래한다.

특히, 애틋한 추억이 서린 고향과 가난한 가족사를 시적 출발점으로 삼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놓고/새끼를 건드리면 움찔/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지구를 반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거미줄’) 가족의 끈을 쉽게 놓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평생 시장 지게꾼으로 살다 간 아비”가 있다. 그리움보다는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시인은 “사망신고를 미루고 미루면서” “아버지의 유골가루를 품고 다”(‘바람과 구름의 호적부’)니며 못내 그리워한다.

또한 “땅에 묻은 김칫독 볼 때마다 한겨울/눈을 헤치고 묵은지를 꺼내던” “스물둘 청상 할머니”(‘정선아리랑’)에 대한 그리움과 “결혼 십년째 여전히 곰팡내 나는 나를 신랑이라고 부르”(‘네 숨소리를 훔쳐듣는다’)고 “형광등 한번 달아준 적 없”어도 “많고 많은 복 중에 찾다 찾다 못 찾다/잘 씻는 남편 둔 걸 복으로 삼”(‘김수영 식으로 방을 바꾸는 아내’)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슬몃 비치기도 한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목욕이란다/눈앞에 닥친 죽음을 맞기 위해 아버지는/살아서의 버릇대로 혼자서 욕실에 들어가/구석구석 이승의 때를 밀었다/그러고 나서 달력 뒷장에 정갈한 필체로/‘잘 살고 간다, 화장 뿌려, 안녕.’/한마디를 남겼다…(중략) 멀어져가는 호흡을 놓치지 않고 귀성길 준비라도 하듯/혼자서 마지막 의식을 치르시던 아버지의 고독한 밤이 생각났다(‘마지막 목욕’ 부분)

 

이런 손택수을 함민복 시인은 “그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탁월한 중매쟁이다. 그는 늘 무엇과 무엇 사이에 관절 튼튼한 접속사로 존재한다. 그를 만나면 세계는 벽을 벗고 경계 이전의 알몸을 허한다”며 “주격과 소유격이 전부인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 세상에, 역접 순접 나열로 세상을 이어주며, 독단을 내려놓는 접속사가 되어, 접속사인 시를 쓰고 있는 그가, 그의 시가 새삼 깊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경남대 국문과와 부산대 대학원을 졸업한 시인은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등이 있다. 신동엽창작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임화문학예술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한 손택수는 우리 시단의 튼실한 버팀목으로서 손색이 없다. 값 8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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