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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칼럼] 한국 군대 왜 이런가
오피니언 한완상 칼럼

[한완상 칼럼] 한국 군대 왜 이런가

쌀쌀하고 을씨년스럽던 1957년 서부 전선의 늦가을이었다. 허기진 내 배는 밥을 달라고 꼬르륵 거렸다. 모범 사단이었던 28사단에서 일등병으로 절망을 씹고 있을 때였다. 새벽 같이 일어나 한 시간 가량 나무하러 인근 야산을 헤매다가 소대에 돌아와, 희멀건 된장국에 맥없이 흩어진 것 같은 밥을 막 먹으려는 순간,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중대 연병장에 계급별로 집합하라고 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 수백 명을 자기 실력으로 죽였다고 평소 자랑했던 중대장이 호랑이같은 얼굴로 사병들에게 훈시했다. 며칠 후 상부에서 감사단이 내려와 여러 가지를 물을 것이라고 했다. 월급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고 했다. 부대 운영에 관해 불만이 있는 지도 묻는다고 했다. 이 모든 것에 잘 대비하여 감사를 탈 없이 잘 넘겨야 한다고 했다.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급여라, 나는 어리둥절했다. 계급별로 줄을 세워 선임 사병의 선창에 따라 계급별 급여 액수를 복창시켰다. 나는 “일등별 월급 ○○환”을 허기진 배를 안고 큰 소리로 외쳐야만 했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급여를 마치 꼬박 꼬박 받은 것처럼 소리 질러대는 내 몰골이 처량하고 처참했다.

사병들의 급여를 착취했던 군 간부들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늦가을 하늘을 향해 소리질러대는 내 모습에 나는 또한 분개했다.

1957년 나는 서울대학교 3학년 한 학기를 마치자 징집영장을 받았다. 무슨 연고로 이승만 정권이 대학 재학생들을 징집했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한국전 후 춥고 배고플 때라, 대학에는 반정부활동에 몸과 마음을 던진 학생들이 없을 때였다.

우리들은 까뮈의 문학적 상상력에,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에 심취되었다. 부패한 정부가 대학생들의 잠재적 이상주의 성향이나 자유로운 기상을 선제적으로 꺾어놓으려고 한 조치일 수는 있었다.

여하튼 학보병(대학생 징집자)에게 군대 생활은 의도적으로 가혹했다. 밥이라도 충분히 먹이면서 나무 마련하는 일이나, 숯 굽는 일이나, 군사 훈련을 시켜주길 바랐다. 그런데 배를 굶기면서 군부의 부패를 은혜하기 위해 거짓 학습시키는 그 뻔뻔스러움에 나는 치를 떨었다. 1951년 저 국민방위군사건의 참상을 잠시 기억에 떠올리기도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이것이 정말 대한민국의 군대인가. 이 짓은 저 소련의 굴락에서나 할 짓 아닌가. 아니면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나 있을 법한 일 아닌가!”

그러나 1950년대 후반 나의 군 생활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는 계기였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삶 전체를 철저하게 그리고 교묘하게 통제하는 전체주의체제와는 결연하게 맞서 싸우는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수 없이 다짐했다.

민주헌법이 보장하는 인간 기본권을 권력이 특수 상황을 빙자하여 스멀스멀 교활하게 훼손하는 그 어떤 국가 폭력도 민주 시민들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나는 하게 되었다. 서울대 교정에서 배울 수 없는 정말 소중한 가치교육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957년이 아니다. 정치적 중진국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한국 군부는 어떠한가? 온갖 군의 비리와 폭행, 특히 사병들의 억울한 고통과 주검은 최근에 와서 끊어지지 않고 있다. 부모들이 자식을 군에 보내는 것을 염려할 정도로 군인권상황은 열악한 것 같다.

부당한 가혹행위가 군에서 일상화되고 있다면, 과연 한국군이 민주 군대라 할 수 있겠는가. 극좌, 극우의 전체주의 군대와 질적으로 확연히 달라야 비로소 민주 군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병들의 온갖 부당한 고통은 바로 이적 행위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주 군대의 사기를 저하시켜 적들을 이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같은 부조리를 방조하는 오늘 한국 군 상층부는 이적 행위를 적어도 방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57년 전 나의 군 생활을 회상하면서 과연 2014년 한국 군대가 그때보다 더 선진화했는가를 묻고 싶다. 특히 지난 5년간 매년 5천명 가까운 사병들이 폭행의 희생자들이었다니 믿을 수 없지 않은가! 과연 역사는 진전하고 있는가? 군부와 정부의 상층부 인사들은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길 바란다.

한완상 前 교육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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