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사건 이후 꼬리무는 가혹행위… 폭언… 성추행… 잘못된 군기가 결국 군대 망쳤다
군 당국은 물론이고 정부와 국회 등에서도 근절방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다 현실성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태와 대책을 살폈다.
가혹행위에 멍든 군부대
2014년 8월12일 오후 2시30분 광주시 송정동 1001야공단 소속 A일병(21)이 자신이 소지한 총기로 머리를 쏴 숨졌다.
당시 A일병은 부대원들과 사격훈련을 실시하던 중이었다. A일병은 A급 관심병사으로, 이때문에 군 당국의 관심병사 관리 및 사격훈련장 총기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또 전날 밤인 11일 밤 10시24분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연천 28사단 소속 B상병(23)과 C상병(21)이 목을 매 숨졌다.
발견당시 이들은 휴가를 나와 사복차림으로 숨져 있었으며, 이곳에서 C상병이 메모한 ‘선임병을 죽이고 싶다’는 쪽지도 남아 있었다.
B상병은 B급 관심사병, C상병은 A급 관심사병이었다.
특히 B상병과 C상병은 모두 군 당국 인성검사에 자살이 예측됐고, 이 중 한 명은 부대에서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다시 부실한 군의 사병관리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앞서 같은 28사단 소속 의무대에서는 치약을 먹이고 가래침을 핥게 하는 등 엽기적인 가혹행위를 당하고 선임병에 구타를 당해 윤 일병(21)이 숨지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8사단은 서부전선 최전방부대로 9년 전 최전방초소(GP) 김 일병 총기 난사사건, 2년 전 무장탈영 현역장교 총기자살사건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강원도 고성군 육군 22사단 GO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사고는 군의 보이지 않는 총체적인 난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병영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관심사병, 군의 부실한 총기 관리와 기강 해이 등은 21세기 대한민국 군이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이기 때문이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군의 총기사고와 탈영사고, 폭행 및 왕따사고는 2000년대 들어 군이 추진 중인 병영문화개선대책이 겉돌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처럼 군부대 내 각종 가혹행위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후폭풍도 거세졌다.
군당국에 폭력·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진정이 추가로 접수되는가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가혹행위를 당해 자살 후 일반사망으로 처리된 병사에게 순직처리 취지로 군에 재심사를 요구했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71사단에서 복무 중인 D일병은 지난해 12월과 올 3월 수차례 선임병 7명에게 생활관에서 진압봉과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또 선임병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부모를 욕하는 행위를 강요당했다고 조사에서 진술했다.
현재 D일병은 폭행에 의해 다리를 다쳐 군 병원에서 두 달째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선임병 중 현역군인인 3명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전역한 4명은 관할 경찰서에 사건을 이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 6사단 의무대에서도 지난해 3월과 4월 E일병이 선임병에게 집단폭행,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E일병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진단을 받고 의병전역, 7개월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인권위는 전역한 선임병 2명에 대해서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앞서 7월10일 밤 11시께 의정부에서는 경북에서 복무하다 의병전역한 F상병(22)이 아파트 23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F상병은 복무 당시 가혹행위 등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상병으로 전역, 집에 오자마자 자살을 선택했다.
인터넷 상에서도 군생활 당시 폭언과 가혹행위를 당했거나 행했다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 누리꾼은 “28사단에서 복무했는데 구타와 가혹행위는 너무 흔해 말할 꺼리도 못됐던 곳”이라면서 “군가 한번 알려주고 못따라 부른다고 배 때리고 발로 차고. 인간존엄성이 바닥에서 얼마나 더 떨어질 수 있는지 경험했다. 죽고싶다는 생각도 많았고…”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국민 여러분께 큰 충격과 심려를 끼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권오성 육군 참모총장은 옷을 벗었다.
남경필 경기지사도 8월 17일 장남이 후임병 폭행과 성추행 혐의로 조사받는 것과 관련, 피해병사와 가족에게 사과했다.
남지사의 장남은 강원도 철원구 중부전선 한 부대에서 복무하면서 올 4월초부터 이달 초까지 맡은 일과 훈련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후임병의 턱과 배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온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또 지난 7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생활관에서 또 다른 후임병 을 뒤에서 껴안거나 손등으로 바지 지퍼 부위를 치는 등 성추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군부대 내 충격적인 가혹행위가 알려지면서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 입대를 앞둔 젊은이와 가족, 친구들은 ‘불안’을 넘어 ‘불신’에 치를 떨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군부대 관련 사건·사고 조사와 방지책 마련에 민간전문가 등도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방 군부대에 동생이 복무 중이라는 K씨(27·여)는 “최근에 군부대에서 총기사고와 가혹행위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를 않아 (동생 걱정에)부모님과 함께 매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불안감을 나타냈다.
아들이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J씨(49)도 “관습처럼 내려오는 군부대 내 가혹행위를 완전히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건조사와 처벌, 방지책 등 모든 관련 분야에 민간 등이 함께 참여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차라리 이제는 군인들을 징집에서 모집으로 전환하는 등 근본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군부대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진상조사 등을 군에만 맡기지 말고 피해가족과 민간전문가, 국회 등이 참여하는 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역 시절 병영문화개선을 선도해 온 강한석 예비역 장군(61·현 새누리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민간전문가 등이 함께하는 국민병영문화혁신단을 만들고 병영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군이 변화하지 않으면 윤 일병 사건과 같은 가혹행위는 근절되지 않는다”면서 “군 입장에서 자존심 상할수도 있지만, 민간과 함께 현 병영문화를 뿌리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장군은 “윤 일병 사건 등 군부대 내 가혹행위에 따른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국민이 원하는 수준으로의 변화를 군이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크다”면서 “지금껏 병영문화개선을 위한 각종 방안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군의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군 혼자 변화하지 못한다면 민간이 포함된 국민병영문화혁신단을 구성해 실행에 옮겨야 한다”면서 “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 살 깎는다는 각오로 변화에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군부대는 풍선과도 같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오른다”면서 “일련의 사건·사고에 획일적인 방지교육은 관심병사들에게는 ‘나 때문에’, 일반병사들에게는 ‘너 때문에’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그는 “위기에 빠진 군이 정상화되려면 평소 훈련과 운동, 단체활동 등을 통해 ‘우리는 하나’라는 단합정신을 되새겨주는 한편, 부대원의 사기를 드높일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 _ 안영국 기자 ang@kyeonggi.com 사진 _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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