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아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 누이…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군포 작가 성석제의 새 장편소설

비정한 현실 속 투명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절대적 감동’ 선사

한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다.

금방이라도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질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마침 그 곁을 지나던 또다른 투명인간이 그를 알아본다. 그의 이름은 ‘김만수’. 그는 왜, 어떻게 투명인간이 된 것일까.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성석제가 그(김만수)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군포 작가, 성석제가 새 장편 ‘투명인간’(창비刊)으로 돌아왔다. 작가의 첫 연애소설 ‘단 한 번의 연애’ 이후 딱 2년 만이다. 이번엔 ‘김만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절대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두메산골 ‘개운리’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만수는 볼품없는 외모에, 유난히 허약하게 태어난데다 말도 늦고 매사에 이해가 더디지만 마냥 착하고 순박하기만 하다.

소설은 그의 가족을 비롯해 친구, 동료 등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이 차례로 화자로 등장해 그에 관한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진술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본 만수의 일면, 그들이 보고 겪은 각각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짧은 이야기를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입체적이고 커다란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와 함께 소설은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겪는 세상살이의 한 대목들을 모아 수십년에 걸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장면 사이사이의 시간적 공백을 통해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내는 절묘한 구성 또한 이야기꾼 성석제의 독보적인 면모다.

특히,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던 시절부터 꼬박 이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고, 바구니를 끼고 산나물을 캐러 다니고, 차력사의 묘기를 따라 하고 썰매를 타다 사고를 내기도 하고, 채변검사, 썰매 타기, 혼분식운동 등에 얽힌 갖가지 소동들이 벌어지기도 하는 등 만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우리가 지나온 시절을 떠올리게 하면서 아련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 시절을 겪은 사람만이 알고 있을 그 기억과 감각을, 그때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세밀하고 정교하게 복원해내는 솜씨 역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가진 것 없고 잘난 것도 없지만 미련스러울 만치 순박하고 헌신적으로 가족과 삶을 지켜나가는 만수, 그러나 그는 끝내 누구에게도, 가족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온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끝까지 만수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김만수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우리가 돌아보지 못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아버지, 누이, 그리고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값 1만2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