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이 11년만에 새 소설집 ‘천사는 여기 머문다’(문학동네刊)을 냈다.
‘모든 자유를 가진 것 같지만,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우리 사회 여자들의 갇힌 삶이 전경린의 문학적 관심사였다.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전경린의 인물들은 점차 사랑의 외연(外延)을 넓혀나간다. 홀로이던 그녀들의 곁에 이제 딸과 엄마와 동생과 이웃 여자들이 있다. 그녀들은 짐승처럼 천진스러웠던 시절을 지나, 평화로운 식물성의 생활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아빠의 불륜상대인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동안 그 여자의 고향을 외갓집으로 알고 들어가 지내게 되는 열한 살 은애(‘강변마을’),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한없이 자유롭지만, 남자가 결국 떠나리라는 것을 아는 여자(‘천사는 여기 머문다 1’), 어릴 적 헤어져 만난 적 없는 할머니의 부고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계영(‘흰 깃털 하나 떠도네’) 등이 그녀들이다.
황도경 문학평론가는 전경린의 여자들에 대해 “이제 그녀들은 안다. ‘짐승처럼 천진스러웠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온몸을 휘감는 열정의 시간이 또한 추락의 시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의 상징인 반지가 빛방울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목하 그녀들은 짐승에서 나무로, 마녀에서 천사로 변모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일찍이 ‘정념(情念)’과 ‘귀기(鬼氣)’라는 강렬한 단어들로 설명되어온 전경린의 소설들은, 이제 우리의 내면에 잠재한 고통스러우면서도 찬란한 생명의 빛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유의 시정(詩情)적인 문체와 세밀한 묘사를 통해 표현되는 것은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이기도 하고, 전락을 향해 달려가는 무거운 현실이기도 하다.
‘물의 정거장’ 이후 11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묵묵히 써낸 9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이 소설집은 가히 전경린 문학의 정점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2007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악마와 천사라는 본성의 양면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천사는 여기 머문다 2’와 2011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강변마을’, 2004년 대한민국소설상을 수상한 ‘여름 휴가’ 등, 평단과 독자 모두를 만족시켜온 그의 소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은 아직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이다. 지리멸렬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경이롭고 환희에 찬 인생,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하얀 ‘천사’의 날개를 펼쳐내며 살아감을 멈추지 않는다.
값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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