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서표 ‘발칙한 상상’ 통할까?
표제작 ‘끄라비’을 비롯해 ‘아르판’, ‘무한의 흰 벽’, ‘티마이오스’, ‘Q. E. D.’, ‘맥락의 유령’, ‘어떤 고요’까지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360억 년을 주기로 붕괴와 대폭발을 반복하고 있는 우주에서 다음 우주의 신을 육성한다는 이야기, 상대를 깔아뭉개고 의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일견 무모해 보이는 이야기, 아마추어 수학자를 자임하며 썼고 실제 수학과 교수에게 검토까지 받았다는 ‘Q. E. D.’ 등 보지 못했던 소재를 끌고 와 현란한 지적 유희를 펼친다. 뿐만 아니라 태국의 휴양지로 잘 알려진 ‘끄라비’가 한 여행객을 사랑하고 질투의 화신으로 변모한다는 설정도 무척 과감하다.
박형서 뒤에는 항상 ‘뻔뻔한 허풍’, ‘발칙한 상상’ 류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 책에 발문을 실은 장은수(편집인)는 아예 박형서를 ‘농담의 악마’라고까지 부른다.
청력 상실이나 청소년기의 방황은 작가 본인에게 분명히 아픈 기억일 텐데도 시종일관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고 등단한 과정은 지어낸 이야기라 해도 믿기 어려울 만큼 코믹하다. 그런데 이 농담이 좀 슬프다. 삼십대 초반에 갑자기 다시 찾아온 일시적 청력 상실과 “향후 수 년 이내에” 완전히 듣지 못하게 될 거라는 전문의의 진단 앞에서 마냥 희희덕댈 수가 없는 것이다. 본인이 아무리 덤덤하더라도 보는 이는 그 덤덤함에 먹먹해진다.
값 1만3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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