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著 ‘철학자와 하녀’

철학은 ‘새로움’의 공부다. 자기계발과 위로의 인문학이 체제에 편입하기 위한 공부라면, 철학은 나의 생각을 점거했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부수는 공부다. 준비가 필요 없는, 당장 시작하는 공부다. 철학을 당장 공부하기에 딱 좋은 책이 나왔다.

비정규직, 장애인, 불법 이주자, 재소자, 성매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철학을 함께 고민해온 현장 인문학자 고병권이 ‘철학자와 하녀’(메디치미디어刊)를 냈다.

책 제목에서 ‘하녀’는 권력의 테두리 속에서 ‘법’ 없이 사는 것을 자랑삼아온 소시민을 뜻한다. 도대체 하녀에게 철학과 인문학 따위가 무엇인가? 철학은 ‘참 한가한 일’ 아닌가?

저자는 “철학자라면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철학을 해야 한다. ‘하녀’도 철학을 통해서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36꼭지 글을 통해서, 철학으로 개인과 사회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제시한다.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 철학의 중요한 개념들, 형제복지원을 통해 본 ‘시설 사회’ 문제 등 당대 사건들까지 아울렀다. 개인적인 경험과 일상적인 에피소드 속에 철학적인 질문과 명제들을 자연스럽게 녹이는 인문학자 고병권 박사의 장점이 잘 드러난 책이다.

일례로 국가나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가난한 이들은 ‘별 수 없이’ 하지만 또한 ‘놀랍게도’ 삶의 공동체를 일구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이 책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꿀 힘은 없다고 느끼는, 무력감에 빠진 마이너리티들에게 ‘철학’이란 도구를 안겨준다.

‘철학은 지옥에서 가능성을 찾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당장 오늘과 내일, 나와 가족의 생존이 걱정되는 마당에 철학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된다.

값 1만5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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