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힌턴 미스트리 장편소설 ‘가족 문제’

‘적절한 균형’, ‘그토록 먼 여행’ 으로 인도의 정치와 종교,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과 콤플렉스를 꿰뚫어온 로힌턴 미스트리의 세 번째 장편소설 ‘가족 문제’(손석주譯ㆍ아시아刊)는 그가 줄곧 선보였던 극사실주의적이면서 온정적인 리얼리즘의 절정을 이룬다.

‘가족 문제’는 그의 장편소설 중 우리 일상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필연적으로 관계 맺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가족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 가족의 문제는 단지 가족 안에서만 발생하고 머물지 않는다. 사회와 국가의 문제들과 복잡하게 뒤얽혀 수많은 부정과 문제들이 난무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작가는 보편적 인간애의 존재를 힘겹게 찾아 우리 앞에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서 펼쳐지는 작은 승리들,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인간애이다. ‘가족 문제’는 로힌턴 미스트리가 추구하는 ‘적절한 균형’으로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뭄바이의 한 파르시 가족 삼대를 다룬 이 소설은 나리만의 일흔아홉 번째 생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은퇴한 영문학 교수인 그는 큰 아파트에서 잘과 쿠미라는 늙고 미혼인 의붓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다. 결혼해 두 아들을 둔 그의 친딸 록산나는 그가 결혼 선물로 사준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행복의 성’과 록산나가 살고 있는 ‘유쾌한 빌라’, 이 두 아파트의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가족의 숨겨진 불행한 역사와 불쾌한 문제들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가족 문제의 공간적 배경은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봄베이(몸바이)지만 시간적 배경은 ‘그토록 먼 여행’보다 25년, ‘적절한 균형’의 마지막 장면보다 12년이 지난 1996년이다. 1996년은 1992년 바브리 이슬람 사원의 파괴와 폭동으로 수천 명의 이슬람교들이 사망한지 3년이 흐르고, 극우 힌두 계열 정파인 시브세나가 집권한 후 봄베이의 이름을 뭄바이로 바꾸던 시기다.

이러한 상황을 여러 겹으로 전하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글쓰기 전략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보잘 것 없는 일상에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우직한 글쓰기는 가족의 폭정과 위기가 공동체, 사회, 그리고 국가와 어떻게 서로 맞닿아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족 문제’를 읽다보면 인물들의 구질구질한 삶에 마음 아프다가도 곳곳에서 피식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대사와 장면들이 있다. 미스트리가 구사하는 정교한 풍자와 직설적인 유머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독자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값 1만8천500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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