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장편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소설가, 시인, 자유주의 사상가, 사회·경제 칼럼니스트, 영어공용화론자, 사회평론가…… 복거일(68)을 소개하는 다양한 단어들이다.

그런 그가 아프다. 간암 투병중이다. 2년 반 전에 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그는 항암치료를 포기했다.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刊)에서 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현이립’을 통해서 말이다.

“치료받기엔 좀 늦은 것 같다. (…)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글 쓰는 데 쓸란다. 한번 입원하면, 다시 책을 쓰긴 어려울 거다.”(14쪽)

소설가 복거일은 우리나라 SF소설의 선구적인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철저하게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 있으니, 바로 ‘현이립’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씌어진 소설이다. 

휴전선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감춘,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의 현장의 체험을 짧은 에피소드로 이어나간 ‘높은 땅 낮은 이야기’가 그 첫번째 소설이고, 두번째 소설 ‘보이지 않는 손’에선 현이립이 30년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경제연구소의 실장을 거친 뒤 여러 권의 책을 낸 50대의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로 등장한다.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소설은 주인공 ‘현이립’이라는 인물에서 작가 복거일의 모습이 보인다. 아주 많이.

작가도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은 어떤 뜻에선 나의 자서전이다”라고 밝히기도 했거나와, 주요 사건이랄 수 있는 ‘영화사와의 소송 건’이라든가, 소설 속에서 집필중이었던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라든가, 주인공이 과학과 경제 분야의 전문적인 영역에까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등이 당시 복거일 작가의 현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60대 후반의, 그러나 아직, 이 나라와 나아가 이 세상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하여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지식인 현이립은, 여전히 활발하게 사회적 발언을 던지고 문학적 행보를 멈추지 않는 작가 복거일 자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작품의 입구에서 잠시 멈칫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의 서두에서 병원에서 간암 진단을 받고, 이 사실을 딸에게 알리는 현이립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게는 시간이 없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 그러나 그는 종교에 귀의하지도 생명 연장을 위해 치료에 뛰어들지도 않는다. 평생을 그래왔던 것처럼 읽고, 생각하고, 쓴다.

값 1만1천500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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