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세번째 시집 ‘차가운 사탕들’

상상력만으로 현실과 환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영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차가운 사탕들’(문학과지성사刊)이 출간됐다.

이영주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가 있다. 현재 ‘불편’ 동인으로 활동 중인 등단 15년 차 시인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이영주의 시를 가리켜 “사람살이와 시의 창조에서는 단순한 포기가 거대한 모험으로 통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번 시집은 생의 절망을 뒤로한 그녀의 문장들이 숨 막힐 듯 빼곡한 밀도로 채워진 진공의 시 공간 안에서 어떤 모험으로 어떻게 승화하는지를 또렷이 그려낸다.

올해 마흔이 된 시인은 자신을 “세계의 모든 괴물 중에 내가 제일 큰 괴물”이라 말한다. 그녀의 시어들을 나열하다 보면, 그녀가 어떤 절망적인 마음으로 몰래 혼자서 문장을 써 내려갔을지 가슴이 아릴 지경이다.

내가 가진 재주는 허공에서 선을 타는 것

위로 올라와 현기증을 앓는 것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을 예감하는 것

새들이 전선에 모여

어느 활선공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지

듣고 있네 발톱을 세우고 깃털을 툭툭 털어내며

고장 난 고압전선을 이어 붙이는 사람

그 사람은 가장 조심스러운 발바닥을 가졌지

공중에 걸쳐 있는 발바닥에서 음악이 시작되고 있다

울고 있다

_「활선공」 부분

“가장 조심스러운 발바닥”이 되어 “나는 그 공포 사이를 걷지”와 같은 그녀가 짜내는 무늬(문장)들은 “내가 가진 재주는 허공에서 선을 타는 것/위로 올라와 현기증을 앓는 것/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을 예감하는 것”일 뿐이다. 거절당할까 봐 두렵고, 멍청하게도 외롭기만 할 때 마침내 시인은 “매일 아침 시체가 되는 욕망/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의 체념은 일반적인 의미의 단념이나 내려놓음은 아니다. 가혹한 절망 가운데서도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어리석도록 끝나지 않는다.

고통의 세상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게 시인과 한 몸이 되었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산에서 움직이지 않고 소녀를 바라보다 나무가 된 사람”과 같은 세번째 생물로 살아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는 떠날 수가 없”을 테니까. 여전히 시인은 “사랑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으로 살아가겠지만 “매일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것” 또한 생이기에 혼자이지 않기 위해, 혼자이기 위해 시인은 말한다.

“울지 말아요, 여름” “나는 여름에 변하지 않으니까”라고. 다가오는 여름에도 우리는 세계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겠지만 손대면 바스러질 듯한 다정한 친구들이 너무 크고 슬퍼서, 절망하고 꿈꾸며 계속 살아갈 것이다. 차가운 사탕이 녹으며 단맛을 전해줄 것만 같다. 값 8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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