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사주세요” 간절한 문자의 정체는?

애끓는 農心 “제발 농산물 사주세요”
‘풍년의 역설’ 반토막 난 채소값… 판매 호소 ‘단체 문자’도 등장

“무값이 폭락해 못 팔고 있습니다. 제발 사 주세요.”

양평에서 무를 재배하는 A씨(58)는 최근 지인과 기존 고객들, 명함을 주고받았던 사람 등 총 500명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지난해 가을 농사지은 무 7.5t 가량을 저장해 놨지만 무값이 반토막나면서 고육지책으로 이 같은 방법을 생각해 낸 것.

‘이 문자는 제게 명함을 주신 500분에게 전체 문자로 보내 드리니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메시지에는 ‘박스값 2천500원, 택배비 4천원, 작업비 2천500원, 씨앗·비료값 3천원, 25㎏ 한 박스 합 1만2천원에 보내드립니다’라는 생산원가까지 공개됐다.

A씨는 “한 상자당 2만5천원을 받던 것이 1만5천원 아래로 떨어져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워졌다”며 “밭에 쏟아버리긴 아깝고 판로도 마땅치 않아 원하는 분에게 거저 드리자는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다”고 말했다.

‘풍년의 역설’이 농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제주도에서는 양배추를, 진도에서는 대파를 산지폐기하는 등 농민들은 한 해의 정성을 쏟아부은 밭을 스스로 갈아엎고 있다.

농협은 배추 가격이 지난해보다 64% 떨어지며 수급안정매뉴얼상 ‘경계’ 단계에 진입하자 겨울배추 4천t에 대해 자율 출하 감축을 실시하기로 했다.

18일 aT 가격정보에 따르면 이 날 배추 1㎏ 평균 도매가격은 410원으로 지난해 1천264원에 비해 67.6% 떨어졌고 시금치는 4㎏당 1만1천680원에서 6천600원으로 43.5% 하락했다. 상추와 오이, 감자, 양파 등 대부분의 채소들이 20% 이상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태풍없는 여름을 보낸데다 겨울날씨까지 포근해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재배 면적이 늘어난 작목은 피해가 더 크다.

이 때문에 생산 관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수급조절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농협 경기지역본부 관계자는 “농산물의 특성상 계획적 생산과 인위적 제한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수급과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계약재배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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