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얼음 결정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는 아름답고 불길한 동화 ‘얼음의 나라 아이라’로 시작되는 소설은 이 동화에서 영감을 받은 천재 과학자 노아가 말을 결정화하는 실험에 실패한 뒤, 말이 만들어내는 부패하고 냄새나는 펠릿 때문에 사람들이 말문을 닫고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바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과 ‘소통’이라는 언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런 SF적 상상은 작가 특유의 시적인 문체와 결합해 먹먹하고 절망적인 시기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 고통을 실감하게 한다.
‘단 하나의 욕망’인 ‘말’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이 우울한 공상은 그 정황 안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공포와 혐오의 감정에 휩싸이게 하고 우리를 슬픔 안에 가둔다. 말을 가진 인간 모두에게 이 소설은 극단의 체험이다.
‘바벨’은 작가의 경험치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정용준은 작가의 말에서 “어릴 때부터 말을 할 때마다 무언가를 죽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쉽게 말을 할 수 없었고, 오랫동안 말더듬이로 살아왔다고 한다. 그 문제를 언젠가는 해결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소설로 쓰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일까 정용준 소설에는 유독 언어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단편 ‘굿나잇, 오블로’, ‘떠떠떠, 떠’ 등. 말하자면 이번 작품은 말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관심이 언어 장애를 겪는 전 인류의 이야기로 확정되면서 말이라는 인간의 욕망과 능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포획해버리는 가혹한 실험까지 하게 된다.
정용준은 1981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떠떠떠, 떠’가 제2회 젊은작가상에, 단편 ‘가나’가 제1회 웹진 문지문학상 이달의 소설에 선정됐다. 현재 ‘텍스트 실험집단 루’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값 1만2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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