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혐의 강제출국 외국인, 정부 상대 소송 패소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를 오가며 중고차 무역업을 하던 예멘인 A씨(36)는 계획했던 승용차를 모두 사들이지 못한 탓에 한국 내 체류기간을 연장하려 지난해 2월15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그러나 1시간 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당신은 위험한 인물이니,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말과 함께 A씨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감금된 A씨는 6일 만에야 고국인 예멘으로 강제 출국 조치됐고, 2주일이 지난 같은 해 3월4일에서야 입국금지가 해제됐다.

A씨는 “6일간 아무런 조사도 없이 구금한 것은 재량권 남용이나 과잉금지에 해당하고 강제 출국 조치도 부당하다”며 인천지법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5천103만 6천800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A씨의 변호인은 재판에서 “국가정보원 등 한국 정부가 정당한 근거 없이 A씨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했다. 불법구금과 강제출국 조치 등은 모두 위법하다”면서 “A씨를 강제출국시킨 국정원이 법원의 관련 문서제출 명령에도 아무런 자료를 재판부에 내지 않은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 국정원 측은 “A씨의 고국인 예멘이 국제테러조직인 알 카에다가 활동하는 국가이고 A씨가 싱가포르 등에서 입국 규제됐었다. 또 A씨가 싱가포르에서 체포된 테러리스트 B씨와 친분이 있다”면서 합당한 절차였음을 주장했다.

인천지법 민사4단독 이효진 판사는 10일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가 정당한 근거 없이 원고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했다고 보기 어렵고, 보호조치(감금)나 강제퇴거 명령(강제출국 명령)이 위법하다고 인정키에 부족하다”면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의영 공보판사는 “민사재판은 형사재판과 달리 소를 제기하는 원고 측에 모든 입증 책임이 있다”며 “법원이 제출 명령한 서류를 피고 측이 내지 않은 사실 자체만으로 원고 측의 주장이 입증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민우기자 lm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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