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유고집 ‘눈물’

“오늘은 2013년 새해 첫날입니다. 아이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주님, 제게 힘을 주시어 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은 5년 동안 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오셨습니다. 오묘하게. 그러니 저를 죽음의 독침 손에 허락하시진 않으실 것입니다. 제게 글을 더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시어 몇 년 뒤에 제가 수십 배, 수백 배로 이자를 붙여 갚아 주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2014년 새해, 작가 최인호(1945~2013)는 없다. 그는 2013년 9월 25일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2008년 암 진단을 받은 최인호는 세상과 단절한 채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환자가 아닌 작가로서 죽고자 했다. 육신의 아픔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이러한 그의 열정을 파괴할 수 없었다. 깊은 밤, 탁상 앞에 앉아서 그는 자신의 고통과 마주한 채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인해 손톱 한 개와 발 톱 두 개가 빠져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얼음 조각을 씹으면서 미친듯이 썼다. 고독과 눈물, 그리고 사랑의 언어로. 

‘인간 최인호’의 마지막 고백을 담은 유고집 ‘눈물’(여백刊)이 출간됐다.

책은 그가 떠난 집필실 책더미에서 아내가 우연히 발견한 미공개 육필 원고 200매로 채워져 있다. 작가가 벗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써내려간 미공개 원고 사이 사이에 짤막한 내레이션을 넣고, 두 손녀를 비롯한 지인들의 추도의 글을 더했다.

책 말미에는 샘터사 고문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 동갑내기 동무 이해인 수녀, 배우 안성기, 이장호 감독, 오정희, 김홍신, 정호승, 김주연, 권영민, 윤후명 작가부터 하성란, 조경란, 김연수 같은 후배들까지 최인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내온 감동의 편지도 실렸다.

‘눈물’은 작가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의 최인호 이야기다. 그리고 1987년 천주교에 귀의한 최인호 베드로의 영적 고백이기도 하다.

병이 깊어갈수록 오히려 작가의 정신은 더 맑고 깊어졌다. 작가 최인호는 신을 향해 ‘빈손’으로 나아가길 꿈꾸었다.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움으로써 작가 최인호는 신 앞에 벌거벗은 영혼으로 선다. 벌거벗은 영혼은 날것 그대로의 삶과 죽음을 본다. 생명의 경이, 죽음의 신비, 영혼의 광채, 만남과 이별, 그리고 구원…. ‘눈물’은 신 앞에 선 자가 보내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며, 동시에 그에 대한 응답이다.

그는 떠났지만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의 눈물 자국처럼, 그가 남기고 간 깊고 향기로운 글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값 1만3천800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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