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도 넘는 쇳물과 반평생… “전통문화 계승은 숙명이죠”

‘광명유기’ 주상순 대표

“매년 설이나 추석이 되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짚으로 놋그릇을 반짝이게 닦던 추억이 있을 겁니다. 뜨끈한 아랫목에서 어머니 사랑이 듬뿍 담긴 주발의 밥을 꺼내 먹으면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았죠.”

가족애의 정취가 물씬 풍겼던 정겨운 옛 풍경이 스테인리스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끊어진 우리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장인이 있다.

광명시 옥길동에서 공방을 운영 중인 ‘광명유기’의 주상순 대표(58)가 바로 그다. 지난 13일 찾은 그의 공방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석 대의 대형 선풍기가 쉼 없이 찬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겨울에도 대형선풍기를 틀어놓고 일해야 하는 찜통, 여름에는 온종일 물을 들이켜도 땀으로 모두 날아가 버리는 한증막 같은 곳이 주 대표의 공방이다.

지난 1983년 처음 유기 일을 접한 뒤 반평생 넘게 유기제작에만 전념해온 그는 섭씨 1천도가 넘는 쇳물을 다루는 힘들고 고단하지만 이 일을 숙명이라 여긴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가족들의 반대도 반대였지만 연탄이 주 난방재로 사용되던 당시, 가스 접촉 시 시커멓게 변색되는 유기제품의 특성은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과정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 대표는 유기를 놓지 않았다. 식기 수요가 없으면 공예품으로 놋대야나 촛대, 꽹과리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고 그 명맥을 이어왔다.

감각도 강점이지만 주 대표 특유의 성실함과 인내는 유기의 그것과도 닮아있었다. 그러면서 기회가 왔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음식에 대한 개개인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식기 시장에도 ‘웰빙’ 바람이 분 것이다.

유기제품은 보온은 물론 보냉효과가 뛰어나다. 무엇보다 식중독균 등 유해세균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8년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이 실시한 실험에서도 유기제품에서 99%의 비브리오균 제거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또 유해한 성분이 포함된 음식이 유기에 담겼을 경우 순간적으로 색이 변화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검증기능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유기제품의 이 같은 특성이 알려지면서 점차 그 수요도 늘고 있다. 올해 ‘광명유기’가 만든 반상기세트가 홈쇼핑에 넷 차례 방송되면서 2천여 세트가 모두 소진된 것이다.

그야말로 화려한 부활인 셈. 주 대표는 여세를 몰아 식기에 취중된 유기제품의 용도와 모양을 다각화하는 작업에 새롭게 몰두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전국에 판매망을 갖춘 인테리어 업체인 ‘흙과 사람들’과 업무제휴를 통해 판로확대에도 나섰다.

주상순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잠재적 수요가 많은 만큼 제품 개발과 함께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계승은 물론 식탁문화를 선도해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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