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잔해는 오솔길의 낙엽으로 남아 바람이 불때마다 철새떼처럼 일시에 비상하고 있다. 가을이 문을 닫았다. 숲속은 앙상한 가지를 엉키며 치열하다. 밭배나무, 쪽동백, 대팻집나무, 비목, 다릅나무, 노린재나무, 물푸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고염나무 까지 모든 나무들은 잎을 털어낸 채 겨울을 견뎌낼 준비를 마쳤다. 항몽유적지 덕주산성의 돌무지들도 서로를 꿰어 안은 채 차가운 지기를 받아내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1급(천연기념물 217호) 산양은 가파른 월악산 영봉을 바람처럼 헤집고 있다. 산허리서 만난 덕주사 마애불은 북두칠성 별빛 떨어지는 온화한 곳에 조각되어 이 시대의 나그네를 굽어본다. 천년 신라가 멸망한 뒤 국권을 회복하려던 마애태자는 꿈속에서 신의계시를 받는다. 그래서 누이동생 덕주공주와 함께 불사를 하고 이곳에 마애불을 세웠다. 세월은 가고 그들의 꿈만 자애로운 표정으로 남았다. 마애태자의 꿈이 얼마나 많은 시절까지 남아 전해질까. 세월은 아무도 모른 채 무상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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