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천250만 도민의 숙원 ‘경기고법’

대한민국 인구의 25%가 사는 경기도에… 고등법원이 없다?

경기도에는 항소사건을 맡는 고등법원이 없다.

그 덕에 1심인 지방법원 합의부 판결에 대한 항소 사건, 지방법원 합의부 결정ㆍ명령에 대한 항고 사건, 서서 소송 사건 등에 휘말린 경기도민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고등법원이 있는 서울로 향해야하기 때문이다.

길게는 1년 이상의 재판이 진행하는 동안 수십 번 서울을 오가며 재판을 받으러 다녀야 하는 도민들의 불평불만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도내 안팎에서 경기고법 설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전제 조건은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이다. 하지만 현재 첫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문턱조차 정치적 문제로 넘지 못하고 있다.

검토중… 조율중… 도민 ‘원정 재판’ 원성 귀막은 국회

정치적 이해관계·지역별 형평성 두고 소모적 공방만

“이게 18대 국회에서도 항상 문제가 돼서 의원들이 입법발의를 하지요, 자기 지역에 법원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자기 실적일 수도 있고요. 또 수요자의, 국민의 측면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의원들의 힘겨루기 식으로 법원이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15일 법제사법소위 1차 회의에서 소위원장 대리를 맡았던 이춘석 의원이 한 말이다.

특정 의원의 입장이 아니라, 경기고법 설치에 관한 법률안을 놓고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이다.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류 일부개정법률안’에 포함돼 타 지역과 함께 일괄상정 되는 것은 경기고법 설치 관련 법안의 운명이다.

지난해도 김진표ㆍ원유철 의원이 각각 발의한 경기고법 설치 관련 법안은 인천지법 서부지원, 김해지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신설 등과 함께 논의가 됐다.

같은 법률안의 개정에 의해 가능한 사안이지만, 좀 더 차별화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는 이유다. 

“그래서 법원행정처가 정말 수요를 매겨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을 항상 요청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답을 안주세요. 그런데 정말 이 수요라는 것이 계속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에 대한 법원행정처가 정확한 수요조사를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는 무더기로 통과될 수 있습니다.

어디는 해주고 어디는 안 해 줄 수 없거든요. 국회 입장에서는 그래서 입장을 법무부와 상의해서 수요와 재정 소요까지 고려해 우리가 생각하는 수요는 이렇다 하는 정도는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어지는 회의록의 내용이다. 경기고법의 설치가 부진한 이유는 국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지역 간 형평성과 예산 마련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와 함께 대법원 등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지난해 국회에서 논의된 경기고법과 관련한 결론이다.

지난해 김진표ㆍ원유철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은 아직까지도 법사위 1소위에 상정만 돼있는 상태다.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1소위를 거쳐 법사위 전체회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올해 안으로 다시 한 번 1소위에서 논의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또다시 예년과 같은 형식적인 논의만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크게 일고 있다.

대법원 “필요성 인정” 입장 선회

전향적 자세 불구 법률개정안 처리 안 돼… 수원 영통동 부지 사용도 숙제

대법원은 올해부터 경기고법 설치를 위한 필요성을 지난 4월18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 ‘공감은 하지만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며, 소극적 태도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자세를 고쳐 바꾼 셈이다. 대법원은 수원 영통동에 있는 비축 토지(1만8천845㎡)가 경기고법 청사 신축 부지로 선정된다면 예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

지난 4월에 사용 예약 신청과 6월 신청 평가 자료 제출, 7월 법원행정처 업무 담당자가 조달청을 방문해 부지 필요성을 직접 설명키도 했다.

그러나 9월 있었던 기획재정부 사용 예약 승인은 받지 못했다.  경기고등법원 설치에 관한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탓이다. 또 경기고법 설치와 관련 중장기 재정계획 및 예산 반영 미흡, 사업계획서 및 설계 자료 제출 미흡, 경기고등검찰청(가칭)과 연계 미흡 등 전반적인 준비 부족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해당 부지에 다시 한 번 사용 예약을 신청하는 등 경기고법 설치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계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경기도·지역 시민단체·정치인 분주한 움직임

2007년 6월 최초 발의 후 수차례 폐기·발의 반복… “이번엔 반드시”

경기고법 설치 움직임은 2006년부터 있었다. 수원고등법원 설치의 타당성에 관한 연구보고서 발간을 시작으로, 2007년 6월에는 경기고법 설치 관련 법안이 최초로 발의됐으나 이듬해 5월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08년 7월 당시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 등 도내 국회의원 19명은 또다시 경기고법 설치 관련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지만, 또다시 임기만료로 2012년 5월 폐기됐다.

그동안 경기도의회가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회 공청회를 개최했으며, 헌법소원 청구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지난해 또 다시 김진표ㆍ원유철 의원이 각각 경기고법 설치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대법원의 입장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지난 회기와 큰 차이는 없다. 국회를 조금 벗어나서는 많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정부에 고법 설치 촉구 서한을 보냈고, 수원시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김진표 의원은 지난 6월 국회 토론회 개최를 개최하고, 경기도청은 지난 7월 도지사와 경기도내 국회의원간의 조찬간담회도 가졌다. 

수도권이란 이유로 법원서비스까지 역차별

항소·항고재판, 가사·소년 재판 받으려면 서울行 큰 불편

 

현재 고등법원은 서울, 부산 등 5개소에 설치돼 있다. 헌데 인구 1천250만명에 이르는 압도적인 법률수요에도 경기도에는 고등법원이 없다. 춘천·청주·창원·전주·제주에 있는 고법 원외재판부조차 없다. 범위를 좁혀 수원지법과 5개 지원이 관할하는 경기남부지역 19개 시·군 지역 인구는 모두 780여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16%에 해당하고, 유입인구의 증가율로 재판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도민들은 항소·항고재판이나 가사·소년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까지 원정을 다니고 있다.

서울에 가깝다는 이유(?)로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제대로 행사조차 할 수 없는 도민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서울고등법원이 관할하는 서울, 인천, 경기, 강원도의 인구 및 고등법원 이송 사건 수는 타 지역 고등법원보다 월등히 많다.

서울고법 관할구역 내 인구는 전체인구 대비 약 52%를 차지하고 있으며, 항소심 사건은 전체 대비 64%에 달한다. 특히 서울고법 항소 사건 중 수원지방법원에서 이송된 사건이 19.2%로 서울을 제외한 관할구역 내 지방법원 중 가장 많다.

이 같은 도민들의 불편과 함께 재판이 집중되는 서울고법의 업무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도내 고등법원 설치에 대한 필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경기일보, 고법 부지마련 등 대안 제시

도청 신청사 부지 활용안 지역 정치권 공감 이끌어내

경기고법 설치와 관련해 경기일보는 가장 선결과제인 부지 확보를 위해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했고, 이에 경기도와 대법원 등과 적극적인 의견교류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본보 임창열 대표이사 회장은 지난 2월 기관장 모임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도청 신청사 부지 일부를 고법 부지로 내놓는 안을 제안했고, 김 지사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함께 참석한 당시 윤화섭 도의장도 이에 동의했다.

도 관계자는 “경기도가 광교신도시내 신청사 부지를 여유 있게 확보하고 있어 청사를 짓고도 상당한 면적의 부지가 남는다. 이곳에 경기고법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고등법원에 부지를 제공하려면 도의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미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눴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3월13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회 회의장 대법원장 초청 생방송 토론회 후 가진 경기고법 질문자와 경기고법 책임자들간의 오찬에서 기획재정부 소유인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땅 4천평에 대한 첫 언급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는 본보 논설실장에게 “고법 설치에 지금 필요한 건 국회의원입니다. 수원엔 김진표 의원도 있고, 남경필 의원도 있잖아요. 그분들이 좀 나서주면 좋을 텐데요.”라고 운을 띄웠다.

이어 본보는 보도를 통해 영통 기재부 땅을 고법 부지로 제시했으며, 보도가 나간 뒤 한 달 반이 지난 4월30일 법원행정처는 수원 영통구 961의 5 일대에 대한 사용예약을 기획재정부와 조달청에 요청하는 등 지자체 정치권의 움직임을 이끌어 냈다.

글 _ 이명관 기자 mklee@kyeonggi.com 사진 _ 경기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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