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새없이 막말 독촉 ‘불법추심’ 여전

금감원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 구멍 숭숭

전화 횟수제한 등 강제성 없어 야간만 방문 금지 ‘허점투성이’

해마다 빚독촉 관련민원 급증 애매모호 규정에 멍드는 서민

지난해 급전이 필요해 대부업체로부터 연 39%의 이율로 500만 원을 빌린 김모씨(32ㆍ여)는 최근 2주간 전화벨만 울리면 가슴이 턱 주저 앉는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내야 하는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자 하루에 5~7회씩 사람을 바꿔가며 추심전화가 걸려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다. 빚을 감당할 여력이 없던 김씨가 ‘개인회생을 신청했다’고 밝히자 해당 업체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최근 불공정 채권추심에 정신적 피해 등을 호소하는 서민층이 늘면서 금융당국이 불공정 추심 근절에 나섰지만 헛구호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제성이 없고 관련된 규정마저 모호해 규정 허점을 노린 대부업체 등의 불법 추심이 활개칠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채권추심 관련 민원은 지난 2011년 2천857건, 지난해 2천665건 등 해마다 2천여건이 넘게 접수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에 신고된 건수만 1천554건에 달한다. 민원 유형별로는 채무사실의 제3자 고지 38.0%, 전화ㆍ우편 등 반복고지를 통한 과도한 독촉행위 21.7%, 사전 약속 없는 추심 10.1% 등의 피해를 호소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을 보호하겠다’며 지난 7월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에 전달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불법추심을 막기에는 모호한 부문이 상당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채무독촉 횟수 제한’을 규정해 정당한 사유없이 반복적으로 또는 야간에 전화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채권추심업 허가 취소 등을 규정했다. 그러나 회사 자체적으로 내부 규율을 마련하도록 해 일률적인 강제 규정은 없는 상태다.

업체별로 내부 규정만 마련하면 횟수에 상관없이 여전히 반복 추심이 가능한 셈이다.

또 ‘방문 추심’의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또는 야간(오후 9시 이후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에 방문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했지만, 역시 명확한 횟수 제한 등이 없다. 야간에 방문을 금지하고 낮 시간대 회사 등으로 수시로 찾아가는 등의 추심은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호주의 경우 전화 추심을 일주일에 3회로 엄격히 제한하는 등 해외의 경우 추심에 관련된 규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그동안 법률적으로 허점이 많았던 부분을 가이드라인으로 규정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내부적으로 지키도록 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동반돼야 가능한 일”이라며 “불명확한 규정은 추심업체의 불법행위를 부추길 수 있어 보다 구체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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