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핵심 IT·벤처 근무환경 여전히 ‘낙후’
안양시의 소규모 IT업체에서 경력 8년차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이모씨(36)는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꿈꾸며 IT업계에 발을 들여놨다.
그러나 그의 꿈은 20대 청년 시절의 기억으로 사라지고 있다.
하루 평균 15시간씩 일하는데도 월급은 2~3개월씩 밀리기 일쑤였다. 국내 한 대기업의 2차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보니 임금 수준도 턱 없이 낮았다. 팀장 수당에 야근 수당까지 다 합쳐도 월 300만원이 채 안됐다. 야근을 이어가며 한 달 평균 390시간씩 일했지만 이 업계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이씨는 “이 업계에선 그래도 월급이 많다고 하지만 열정만으로 언제까지 이 업계에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정부에서는 IT산업을 핵심으로 키운다고 하는데 정작 직원들은 전혀 창의적으로 일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일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IT산업과 벤처기업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일자리의 질은 정부의 외면으로 여전히 낮아 허울뿐인 창조경제 육성이라는 지적이다. IT산업과 벤처기업의 주축을 이루는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임금체불, 극심한 노동강도로 고통을 호소하는 등 창조적인 공간과는 동떨어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 지난 6월 발표한 ‘2013 IT 산업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IT산업 종사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7.3시간으로 지난 2004년(57.79시간)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80시간 이상인 경우는 지난 2004년 조사 시 7.6%에서 올해 12.2%로 늘어났다.
그러나 강도높은 노동에도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초과 근로시간을 집계하지 않는’ 경우가 75.5%에 달했으며 ‘초과 근로수당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76.4%에 달했다.
이처럼 창조경제의 핵심인 소프트웨어산업이 사실상 비창의적인 공간으로 전락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술 퇴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도내 한 IT업계 관계자는 “하청에 재하청이 이뤄지다 보니 고급 개발자를 써야하는 프로그램 개발도 돈이 없어 중급 개발자에게 맡겨 대기업의 수백억원대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귀띔했다.
나경훈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IT업이나 벤처 등은 사람의 창의성이 핵심인 곳인데 정부는 산업의 외형만 키우려는 예산만 투입하고 노동의 질, 규제없는 하도급 구조는 방치하고 있다”며 “IT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에 대한 법적 규제와 근로기준법 단속 강화 등으로 열악한 근로환경과 구조를 바꿔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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