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황순원문학상을 차지한 하성란(46) 작가의 소설집 ‘여름의 맛’(문학과 지성사 刊)이 나왔다.
장편소설 ‘A’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으로,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단편 ‘카레 온 더 보더’를 비롯해 총 10편을 담았다. 2008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알파의 시간’과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그 여름의 수사’도 있다.
이번 소설집의 키워드를 꼽자면 ‘단언컨대, 맛’이다.
표제작의 주인공인 잡지사 기자 ‘최’는 일본 출장 후 자유 시간에 비슷한 발음 실수로 금각사로 가려다 은각사로 잘못 간다. 그곳에서 만난 낯선 한국 청년은 달디단 복숭아를 내민다. 까슬까슬한 털과 주르륵 흐르는 과즙에 끈적거리는 느낌이 싫어 먹지 않았던 복숭아. 통성명도 없이 헤어진 청년처럼 그 맛도 잊히면 좋으련만, 수년이 흘러도 자꾸 그 복숭아가 떠오른다. 취재를 핑계 삼아 유명한 복숭아 산지를 찾아다니지만, 어디서도 없다.
한편 최의 잡지 기획 아이템 ‘여름의 맛’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미식가 ‘김 선생’은 콩국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맛에 대한 표현은 찾기 어렵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미식가, 그는 미뢰의 기억이 아닌 가슴 속 추억을 적는다.
“아버지가 플라스틱 바가지로 콩국을 떠 내게 주었다. …국물과 함께 차갑고 미끄러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나는 그것이 작은 물고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나는 목구멍이 간지러워서 자꾸 웃음이 났다. 그 무덥고 무덥던 여름 날의 콩국 한 그릇.”(p.65)
그가 기억하는 것은 맛이 아니라 추억이다. 어머니를 산에 묻고 내려오는 길에 아버지가 사준 콩국을 여름의 맛을 내놓은 이유도 그러하다. 은각사에서의 복숭아 맛을 결코 찾지 못하는 최와 같다.
하성란은 ‘카레 온 더 보더’에서도 카레의 맛과 향을 통해 누군가의 특별한 만남과 시간을 불러온다. 주인공인 ‘그녀’는 갑자기 맡은 카레향에 스무 살 무렵에 만났던, 다섯의 노인을 봉양하며 죽음의 냄새를 짙은 카레냄새로 가리며 살아가는 소녀 가장 ‘영은’을 떠올린다.
이처럼 작가는 평범한 맛을 각기 다른 특별한 추억으로 호출한다.
또 ‘여름의 맛’이나 ‘카레 온 더 보더’에서 공통으로 주인공과는 다른 층위의 인물 이야기가 맞물리는 다층적 서사 역시 ‘하성란표’ 소설의 매력으로 꼽을 만하다.
값 1만3천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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