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연구원, ‘대전리산성’ 1차 발굴조사 결과
“문무왕 13년(675년) 9월 29일 당나라 장수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거느리고 ‘매초성’에 주둔했는데 우리의 군사가 공격해 쫓아버리고 전마(戰馬) 3만 380필을 얻었으며 그 밖에 노획한 병기도 이만큼 됐다.”
- 삼국사기 中
‘연천 대전리산성(大田里山城)’이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축출함으로써 통일신라시대를 열게 된 매초성 전투의 매초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발굴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간 학계에서는 매초성을 두고 연천 대전리산성과 양주 대모산성으로 주장이 엇갈렸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원장 조유전)은 연천 대전리산성에 대한 1차 발굴조사를 마무리한 결과, 연천 대전리산성이 삼국시대 후기에 축성됐고 신라가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9일 밝혔다. 연천 대전리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대전리산성이 나당전쟁기에 이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문화재연구원 측은 대전리산성의 남쪽과 남서쪽 성벽 일부를 조사, 성벽 구조와 출토된 유물을 통해 나당전쟁 이전에 신라가 대전리산성을 축성하고 관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전리산성의 성벽 몸체는 내성벽을 갖춘 협축식으로 외성벽에 보축성벽을 덧붙여 쌓은 축성기법을 보여준다. 외성벽은 주로 편마암계 성돌을 이용해 품자형(品字形)으로 쌓았는데, 기저부에서 상단까지의 높이는 최대 13m나 되는 곳도 있다. 이같은 성벽 몸체의 축성기법 등으로 미뤄 축성 시기를 삼국시대 후기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병택 연구부장은 “성벽 일부만 조사해 당나라 군대의 주둔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향후 발굴조사를 진행하면 매초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경기문화재연구원은 오는 11일 오전 10시 발굴조사 현장 설명회를 갖는다. 문의(031) 231-8511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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