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요구권’ 사각지대
시중은행, 등급ㆍ실적 따라 가산금리까지 매기던 ‘주택 대출’
신용향상 금리인하 요구땐 “신용대출 아닌 100% 담보” 묵살
수원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43)는 지난 2011년 3월경 8천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도내 한 시중은행에서 받았다. 대출 당시부터 최근까지 연 4%로 26만원 수준의 이자를 매달 내왔다.
그러던 중 김씨는 최근 언론을 통해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승진이나 신용등급 개선 시 대출은행에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 4월 직장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덩달아 신용등급도 크게 향상됐다. 이에 은행을 찾았지만, 창구직원은 ‘주택담보대출’은 인하권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반려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신용대출에 한정돼 있어 순수 담보로만 이뤄진 주택담보대출은 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은행 측 답변이었다.
김씨는 “담보가 주가 되기는 하지만 대출 당시 은행이 신용등급에 따라 금리를 차등해놓고 정작 인하요구 때는 담보대출은 해당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대출을 받은 고객의 신용에 긍정적 변화가 있을 경우 차주가 은행에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으나 정작 가계대출 대부분을 이루는 주택담보대출은 석연찮은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고객이 본인의 신용상태에 현저한 변화가 있는 경우 은행에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지난 2003년 도입돼 2012년까지 은행의 노력부족으로 실적이 3천여건에 머물다 지난해 7월 금감원이 실태조사를 하면서 올 1분기까지 6개월간 취급실적이 8천571건(가계대출 기준)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김씨의 사례처럼 시중은행 대부분 신용상태의 변화가 대상이라는 이유로 100% 담보대출 상품인 주택담보대출의 경우는 제외하고 있다. 지난 6월 누적 도내 가계대출(126조6천억원) 중 75.1%(95조1천억원) 규모의 주택담보대출자들이 금리인하요구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문제는 시중은행이 밝힌 거절 사유가 합당치 않다는 점이다. 은행 측 답변대로 주택만 가지고 대출한 경우 일부 타당하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은행 모두 주택담보대출 시 기준금리 이외 신용도와 거래실적 등에 따라 최소 0.6∼2.13%의 가산금리를 매겨왔기 때문이다.
실제 4일 발표된 17개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보면 1등급∼10등급까지 구간에 따라 0.2% 수준의 금리차가 발생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에도 신용상태 변동에 따른 인하여지가 충분한 셈이다. 그런데 은행이 금리인하요구권 자체의 강제성이 없고, 금리 책정이 전적으로 은행 자율에 맡겨진다는 점을 들어 고객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리자율화로 금융당국이 은행에 법적 강제할 수 없다”며 다만 “가산금리 체계를 합리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다소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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