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著 ‘작가의 얼굴’

‘작가의 얼굴’(문학동네 刊)은 셰익스피어를 시작으로 괴테, 안톤 체홉, 카프카, 귄터 그라스 등 세계 문학 거장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흥미롭게 하는 것은 저자 때문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문학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독일 최고의 문학비평가로 꼽히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인의 98%가 그 이름을 안다는 설문 결과가 있을 정도로 스타다.

올해 93세의 ‘늙은 비평가’인 그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소설같은 삶을 살았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유대인 탄압 정책에 독일 나치의 강제 수용소이자 폴란드에 있는 유태인 수용소로 이송되기 직전 아내와 극적으로 탈출해 한 농가에서 열 달 넘게 숨어 지냈다.

전후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평론가의 길에 들어섰다. 1988~2001년 방송된 텔레비전 서평 프로그램 ‘문학 4중주’를 통해 지금의 인지도를 얻었다. 하지만 솔직하고 거침없는 비평과 대중친화적 태도에 영향력 있는 작가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고. 지난해 1월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에 독일 연방의회에서 유대인 대표 연설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작가의 얼굴’은 유명 작가의 초상화를 함께 보는 독특한 매력의 문학 에세이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평생 수집한 작가 초상화 60여 점을 실었다. 철판화, 석판화, 에칭, 드라이포인트, 연필 스케치 등 그림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브라질의 그래픽 아티스트 카시오 로레다노의 잉크 드로잉 작품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가 그린 뛰어난 그림도 있다. 때문에 이 책 한권을 전시회로 본다면, 마치 초상화로 보는 독일 문학 특별전 같은 느낌이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또 자신이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와 함께 해당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솔직하고 독선적이지만 뚜렷한 비평관을 살리고, 다른 평론가와 달리 에둘러 말하기 보다 쉽고 재미있게 썼다.

이를테면 셰익스피어와 ‘햄릿’에 대해 이 같이 평했다.

“과연 이 작품을 뭐라 불러야 할까. 심리 드라마, 역사물, 살인극, 혹은 시대를 망라하는 정치극, 아니면 철학적 비극? 그렇다. 이 모두에 다 해당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한 사람이 써낸 바로 그 한 작품이 말이다. 어떤 세대든 ‘햄릿’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자신의 문제와 고초, 자신의 좌절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대개는 찾던 것을 발견해낸다. 바로 이 점이 대단하고 기막히고 놀랍다못해 가히 불가해하며, 바로 이런 까닭에 ‘햄릿’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최고의 극작품으로 꼽힌다.”

쉬운 문학 입문서를 찾기 어려운 가운데 평생 독일 문학에 헌신해 온 한 늙은 비평가의 책이 고전으로 향하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값 1만8천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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