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후의 폭염은 대원군의 서슬처럼 독이 올랐다. 그의 정적이기도 했던 명성황후의 명석한 예지도 만만찮았으리. 황후의 생가는 아담한 ㅁ자구조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문득 건청궁의 우울한 비사가 상상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기념관에는 황후를 살해한 흉악한 일본도가 복제되어있었다. ‘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 라는 글귀가 새겨진. 황후는 단순히 칼에 맞아 절명한 것이 아니라 오만불손한 오랑캐적 방법으로 능욕을 당한 후 처참하게 죽여 불태워진 의혹이 있다니 치가 떨린다. 광복절을 앞둔 이 시점에 일본은 반성은커녕 아직 제국주의의 만행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나치를 모델로 한 번 더 광기를 부릴 태세이다.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역사를 지우는 건 국력을 배양하는 것이리. 황후와 더불어 인현 왕후를 탄생시킨 감고당 앞에 한 무리 일본관광객이 뻔뻔하게 지껄이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모시 옥색치마가 같은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떠가는 성하의 하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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