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 횡포’ 부추기는 병행수입제도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 수입업체 몫
국내 상표권자 ‘짝퉁 감정’ 통관보류 요청 남용에도
업체들, 소송도 못한채 손해 떠안고 수입 포기 일쑤
대기업에 유리한 통관과정… 제도개선 등 대책 시급
병행수입을 하려던 군포시 소재 영세 의류업체가 대기업의 위조감정으로 막대한 피해(본보 22ㆍ23일자 1면)를 보고 있는 가운데 국내 독점 수입업자의 통관보류 요청 남용으로 인한 영세 병행수입업체의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어 제도 보완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3일 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최초 세관의 통관보류 결정이 내려진 물품의 15~20% 정도는 소송 등을 거쳐 최종 수입 신고가 수리됐다.
이 의원은 “대부분의 통관보류가 관세청의 직권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도 정식수입업체의 감정결과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감정서만으로 통관보류가 결정되는 등 병행수입통관과정이 지나치게 권리자위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행수입은 독점 수입업자에 의해 외국상품이 수입되는 경우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진정상품을 국내 독점수입권자의 허락 없이 수입하는 것이다.
병행수입 허용 여부는 각국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자국의 국내법으로 병행수입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관세청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수출입통관 사무처리에 관한 고시’ 규정에 의해 이뤄진다.
특히 지난 1995년 ‘리바이스 청바지’의 통관보류 사건을 계기로, 병행수입 허용기준에 부합되는 상품에 한해 동일 상표권자 간의 가격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가격 인하 및 소비자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취지에서 상표법상의 상표보호의 목적 및 상표의 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주)알앤비씨의 경우 관세청은 국내 상표권자인 코오롱에게 상품 감정을 맡기고, 병행수입 가능 여부마저도 이 업체에 확인한 뒤 해당업체에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국내 상표권자의 수입 방해로 중소 수입업체만 피해를 보고 있다. A업체는 지난 2009년 중국에 있는 스포츠브랜드 유통업체에서 국내 가격의 절반 수준의 운동화 600컬레(판매가 6천500만원 상당)를 수입하다 공식수입권을 가진 B사가 짝퉁으로 의심된다고 감정해 통관이 보류됐다.
A업체 역시 검찰 조사까지 받고 결국 무혐의 처분됐지만 대기업을 상대로 장기간 민사소송을 벌일 여력이 없어 큰 손해를 보고 수입을 포기했다. 중소 수입업체들이 수입한 물건을 정식 수입업체가 모조품으로 신고하면 곧바로 통관이 보류되기 때문이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국내 상표권자가 세관장에게 규정된 담보를 제공(가액의 120%)하고 통관보류를 요청하면, 수입업체는 통관허용을 요청할 수 있지만 물품가액의 150%에 해당하는 역담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 수입업체로서는 불가능 한 것이 현실이다. 실제 지난 2008년이후 권리권자의 요청에 의해 통관보류된 33건 중 역담보를 제공하고 제품을 찾아간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이 의원은 “현재 ‘지적재산권보호를 위한 수출입 통관 사무처리에 관한 고시’가 독점수입업자들이 영세한 병행수입업자들에게 통관보류 요청을 남용할 소지가 충분히 존재한다”며 “병행수입 통관 절차 자체가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재기자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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