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식 장편소설 ‘불의 기억’ 출간

욕망과 예술을 향한 두 종쟁이의 광기어린 싸움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가 돌아왔다. 남자는 개를 산책시키기 전까지 “평생 남의 글이나 쓰겠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지난해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전민식(48)의 이야기다. 9전 10기로 마흔일곱의 나이에 문단에 공식 데뷔했으니 날짜로 계산하면 고작 2년차다. 허나 그의 비공식 필력은 20년을 자랑한다.

그래서 긴 무명시절 동안 먹고살기 위해 대필을 하며 ‘유령작가’로 살면서 겪은 작가의 파란만장한 20년 인생사가 더 큰 화제를 모았다. 1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불의 기억(은행나무刊)’을 들고 돌아온 전민식 작가를 딱,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1년 새 전민식은 ‘유령작가’에서 ‘유명작가’가 돼 있었다. 이제 새벽시장에 나가 막노동하지 않고, 대필하지 않고도 본인만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그러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그는 등단 1년 만에 내놓은 신작 ‘불의 기억’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종(鐘)’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과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습작 기간에 각종 문학상 최종심에만 아홉 번이나 거론됐던 작가에게 다양한 소재의 총알(소설)이 있었을 텐데 왜, 종 이었을까.

“20여 년 전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의 종소리를 듣고 처음 구상한 후, 꾸준한 공부와 인터뷰를 토대로 3번 정도 변주해 본 끝에 이번 작품이 완성됐습니다. 아무도 쓰지 않은 소재였기에 다른 누군가가 먼저 쓸까봐 조마조마했다.(하하) 이 녀석(불의 기억)도 최종심에 올라갔다 고배를 마신 작품이다.”

‘불의 기억’은 각각 ‘과학’과 ‘신들림’을 추구하는 서로 다른 불굴의 예술혼을 간직한 두 종쟁이가 사랑과 예술을 두고 벌이는 광기 어린 싸움을 그린 소설이다.

오래 품고 갈고 닦은 세월만큼이나 장인 수준의 해박한 지식과 육화된 묘사와 예술미 넘치는 문장이 압권이다. 단순하게 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는 신라시대 ‘종에 사람을 넣었다’는 설화를 차용해 서스펜스를 조장하며 소설적 긴장과 흡입력을 증폭시킨다. 게다가 그는 평생의 역작으로 남을 종 제작에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수천도의 뜨거운 불 속에서 종을 직접 만들어본 종쟁이처럼 말이다.

“서울대출판사에서 나온 800페이지 상당의 종에 관한 서적을 50번 넘게 탐독했습니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부터 전국 사찰은 다 찾아다니며 종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했습니다.”

작가는 종을 만들어 본적도, 종쟁이와 산 적도 없다 했다. 그런데 어떻게 종에 대한 이 길고 긴 서사와 묘사가 가능했을까. 작가는 유년기와 청년기 유랑의 체험을 작품에 적절하게 녹여내 ‘규철’과 ‘한위’ 두 종쟁이와 그들 각각의 자녀인 네 명의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삶이라는 고독한 싸움과 방랑의 세월을 입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치명적 욕망과 사랑이 뒤엉킨 잔혹하고 아름다운 인간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전민식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살아내는 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며 “그래서 쉴 새 없이 올해 안에 2권의 소설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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