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도시 이야기] 이집트 왕국 비운의 도시, 텔 엘 아마르나

그동안 다양한 고대도시를 언급하면서도 조금 손을 뺐던 곳이 있다. 바로 이집트의 고대도시가 그것이다. 이집트라는 곳은 그 장구한 역사와 문화는 물론 피라미드나 신전 같은 대 건조물로 익히 알려진 곳인데 반해 정작 도시라는 측면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자료나 유적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텔 엘 아마르나라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아크나톤(Ahknaton) 혹은 아멘호테프 4세(재위 B.C. 1379경~B.C. 1362경)가 아몬(Amon) 신을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리던 귀족들을 처단하고 새로이 왕권을 강화하고자 아몬 신 대신 유일 태양신인 아텐(Aten)신을 내걸고 당시까지의 수도였던 테베를 떠나 새롭게 건설한 이른바 신도시였다.

애석하게도 다음 왕인 투탄카멘이 아몬 신 부흥을 이유로 즉위 2년에 되는 해 다시 테베로 수도를 옮기는 바람에 단지 17년 간 존속되다가 방치된 비운의 수도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도시 유구나 유적의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기 때문에 오늘날 고대 이집트의 도시계획을 판명하기에 거의 유일한 도시유적이 되어있다.

카이로 상류 312㎞ 지점의 나일 강 동쪽에 위치하고 있던 이 도시는 나일 강을 따라 동서 5㎞, 남북 10㎞에 걸쳐 선형으로 건설되었다. 일종의 종교개혁을 통한 왕권 강화의 의지가 컸던 탓일까. 도시 곳곳에는 이러한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있다.

나일 강변에 위치한 대 왕궁을 기점으로 아텐 대 신전, 왕의 사저, 기록 창고, 귀족들의 대 저택 등 관청을 중심으로 한 중심부는 그 규모나 화려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도시의 북쪽으로는 북 왕궁, 남쪽으로는 마루아텐이라는 남 왕궁 등이 위치하고 있어 당시 왕의 세력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아텐 대 신전을 왕궁 근처에 위치시키고 왕의 사저 바로 옆에 아텐 소 신전을 두어 왕과 아텐 신과의 일체를 꾀하고 있으며 왕궁과 왕의 사저를 고관대작의 주택들과 군대 병영이 둘러싸고 있어 그 위용과 권위를 한층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강과 나란히 남북으로 설치된 폭 100m의 왕도의 길은 이 도시의 중심도로이자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일종의 주작대로였으며 도시 외곽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노동자 집합주거의 흔적도 왕궁이나 신전 및 도시를 건설하는데 얼마나 공을 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도시형태는 다른 고대 도시와는 달리 성벽을 지니지 않은 자유로운 선형이지만 도시 내부 공간은 정치 종교 중심지, 주거지, 작업 공간 및 묘역 등으로 공간 분할이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고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남쪽 외곽 지역에 시장과 농경지를 별도로 설치하여 주변의 시민들과 공방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아텐 신만을 위해 살겠다던 아멘호테프 4세의 개인적인 욕심이라고만 폄하하기에는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품위와 배려가 아깝기만 하다. 다른 고대도시와는 상이한 이집트만의 색깔도 매력적이다. 종교개혁과 정치개혁을 겸한 과감한 승부수의 도시이자 비운의 도시로만 남겨두기에는 아직도 우리에게 말해 줄 것이 많은 듯하다. 텔 엘 아마르나는 그런 도시이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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