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백제불교 초전가람지 불갑사

남녘의 화신을 견디다 못해 길을 나선다. 길은 과거와 미래의 가교이자 이유이며 목적이었다. 살아야하는 불가피한 의무 앞에 선 마음은 늘 비수 같다. 수분 가득한 속살을 드러내는 과도였다가도 누군가의 심장을 도려내는 흉기가 되기도 했다. 응혈된 마음이나 닦을까하여 침류왕 원년(384) 인도 승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처음 들여와 창건한 초전가람지 불갑사를 찾았다. 산문입구에 융단처럼 돋아난 상사화 잎들이며 수액을 올려 가지 끝을 붉으래 물들인 단풍나무가 새봄을 알린다. 동백도 꽃잎을 태우고 배롱나무는 온몸을 비틀어대며 솟구치는 양기를 주채하지 못하고 있다. 대웅전 지붕의 스투파가 마라난타가 동진을 거쳐 오며 남방불교양식이 유입되었음을 증명한다. 이봄에 무엇이라도 깊이 사랑해야겠다.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같은 사랑, 그런 절대사랑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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