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어려워서… 마지막 자존심 마저 깬다

불황에 ‘쨍그랑’… 서민들 최후의 보루 ‘적금’이 깨진다

수원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씨(45)는 최근 수년 간 불입한 정기적금과 보험상품을 해약했다.

어렵게 유지해 온 상품을 깨는 아쉬움이 컸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난 2007년 은행 돈 2억원을 대출 받아 장만한 아파트가 문제였다. 매달 이자만 100만원씩 내야하는 상황인데다 원리금 상환시기 마저 다가오면서 상환 연장에 대한 부담이 그를 짓눌렀다. 결국 이씨는 해약금 5천여만원을 대출금 상환에 썼다. 조금이라도 원금을 갚아 이자 부담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씨는 “내 집 마련 차원에서 무리해 집을 샀는데 버는 돈은 일정한데 물가는 오르고 교육비 부담도 커 궁여지책으로 아이들 학자금으로 쓰려던 적금까지 해약하게 됐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계 부채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정기적금이나 보험을 해약한 뒤 원리금 상환이나 이자를 충당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

부동산 침체 등 가계 부채 상환하려

10명 중 4명, 적금ㆍ보험 ‘눈물의 해약’

“아이 학자금으로 모은건데…” 씁쓸

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침체 등의 문제로 부채 증가가 지속되면서 국민ㆍ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의 정기적금 가입자 10명 중 3∼4명꼴로 중도 해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KB국민은행이 판매하고 있는 ‘KB직장인우대적금’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 판매된 170여만 건 중에서 중도 해지된 계좌가 40%에 달하며, ‘KB락스타적금’ 4만2천건 중 47%가량이 만기 전 해약됐다. 또한 우리은행 ‘우리나라정기적금’ 역시 전체 27만건 중 38%가량이 중도 해지 됐고, 하나은행의 ‘나의 소원 적금’도 중도 해지 비율이 30%에 육박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율 손해가 발생함에도 정기적금을 중도에 해약하는 고객이 최근 늘었다”며 “대부분 매월 정기 납입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거나 과도한 가계 부채와 이자 상환으로 해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보험 해약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생명보험 해약 건수는 모두 176만6천건(58조7천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3.1% (15.1%) 증가했다.

이처럼 정기상품과 보험상품의 중도 해지가 많은 데는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총부채 비율이 높아지면서 서민들의 저축 여력이 크게 위축된 결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또한 대출금리(연 4.84%)가 꾸준히 오르면서 차라리 정기상품을 해약해 빚을 갚자는 이른 바 ‘금리테크’ 영향도 일부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올해 경제 전망 역시 희망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계 가처분 소득이 더욱 줄 수 있기 때문에 정기 상품 해지는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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