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연 시인의 ‘내 칩은 두개’

“난 복고풍도 아니고 랩풍도 아니야/ 딱 그 중간이지// 왼쪽 귀는 구닥다리고 오른쪽 귀는 신세대/ 왼쪽 눈은 흑백이고/ 오른 쪽 눈은 총천연색// 보릿고개를 넘는 화면과 인터넷을 동시에 보는/ 나는 머리 염색을 못하는 겁쟁이// 푸어쉬크 패션을 좋아하는/ 동생의 청바지 구멍을 뚫어주며/ 아부지가 안 보이는 곳에서 입어 응?// 어른들과 수트를 입고 한정식을 먹고/ 피자집에선 비트 강한 음악에 샌들을 까딱거리는/ 내 칩은 두 개/ 반반씩 저장된// 화면 하나에 동시상영 되는 날도 있지/ 자유로운 집이 없지/ 자유로운 방이 없지/ 양다리 걸친 채/ 잠금이 안 되는 문을 닫고 포로노를 보면/ 사방의 카메라에 노출되어 버리는// 아마 나는/ 단말기 속에 갇힌 바코드”

손태연 시인의 표제작 ‘내 칩은 두개’(화남 刊)이다. 1993년 문예지 ‘문학세계’로 등단 후 세 번째로 펴낸 손 시인의 표제작은 중년 독자의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대중가요 랩처럼 음률이 돋보이는 시어에, 딱 중간에 끼인 세대의 혼랍스럽고 방황하는 의식을 쉬우면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낸 상황이 그러하다.

총 4부의 60편의 시를 싣고 있는 이번 시집에선 불혹을 넘긴 손 시인의 감성이 풍성한 시어로 드러난다.

특히 연작시 ‘낮은 지붕들’에서는 불의를 향해 칼을 든 강인한 어머니를 볼 수 있고, 창조적이며 지혜로운 여성상이 빛을 발한다.

이와 관련 임동확 한신대 문창과 겸임교수는 “자신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새로운 영감에 마음의 문을 열어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과 부활로 이끌고자 하는 지적 열망의 소산으로 가득찬 시집”이라고 평했다. 한편 손 시인은 현재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사이자 패션디스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값9천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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