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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호의 이미지 읽기] “감동의 가위질”
오피니언 조두호의 미술읽기

[조두호의 이미지 읽기] “감동의 가위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세상은 온통 침묵일 것이다. 빛을 느낄 수 없다면 그리고 보이는 것이 없다면 세상은 완전한 어둠 속에 놓이게 된다.

영화 블랙(2005년작릴라 반살리)에 나오는 8살 소녀 ‘미셸’의 이야기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소녀는 아무런 규칙도, 질서도 몰랐다. 짐승처럼 몸에 종을 단 소녀는 음식을 주워먹고 걸치고 있는 옷은 찢어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부모에게조차 외면 받은 소녀. 모두 포기하는 마음으로 미셸을 장애아동 전문 가정교사 ‘사하이’에게 의탁한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부서트리는 미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는 사하이의 가르침. 여러 번의 아찔한 상황이 지나고 창밖에 시원한 물줄기가 내렸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뛰어나간 미셸은 집 앞 마당에 넘어지면서 온몸을 적시는 소나기를 만지며 나지막이 내뱉는다. “물water”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이다. 사하이의 진심어린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 이제 미셸은 세상 밖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영화는 실존인물인 헬렌 켈러(Helen Keller1880~1968)의 감동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극적구성이나 재미요소 때문에 사실과 다르게 연출한 내용이 다소 있겠지만 영화는 헬렌 켈러의 리얼리티를 부각시키면서 당시 사회에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소녀의 장애를 극복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곱지 못한 시선과 인식의 문제를 지적했다.

사진에 보이는 소년이 지그시 눈을 감고 가위에 힘을 실어 종이를 자른다. 수원미술전시관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예술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희준이(엄희준 11세화성시 반송동)는 이제 꽤나 여유 있고 숙달된 표정으로 가위질을 한다.

희준이와 처음 만난 날, 소년의 모친은 아이가 이전에 지적장애를 함께 겪으면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트라우마라도 있는지 칼이나 가위처럼 날카로운 물체는 근처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몇 개월이 흘러 아이의 손에는 가위가 들려져있고 무엇인가를 오리고선 이것은 왕관, 앵무새, 나무 등 자신이 표현한 대상에 관해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희준이의 엄마는 아이의 손에 가위가 들려진 것도 신기한데, 무엇을 표현하니 감동적일 뿐이다.

희준이의 가위질과 미셸의 “물”은 기적의 제스처가 아니다. 장애를 기준으로 정상인 또는 비장애인의 사회가 규정한 경계가 희준이의 작은 변화를 기적으로 보이게끔 종용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외국어를 배우듯 조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장애인이의 눈에 비친 장애인은 조금 더디고 느릴 뿐이다.

장애인은 더 이상 결핍, 손실된 존재가 아닌 다수의 비장애인의 소통 양식을 빗겨간 소수자일 뿐이다. 장애를 차별하는 것은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공격하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과거에 피지배계층이던 흑인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고, 100년 전까지 유교사회였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이제 여성이다. 사회의 인식과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 헬렌 켈러와 희준이가 더 이상 감동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를 바란다.

조두호 수원미술전시관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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