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판 위로 바늘이 내려앉으면 ‘지∼직’하는 짧은 음과 함께 스피커에서 음악이 흐른다. PVC 재질에 미세하게 파인 홈을 따라 바늘이 너울거리면 스피커에는 잡음까지 재생된다. 혹시라도 보관을 잘못하면 노래가 튀거나 한 곳에 반복되는 일도 흔했다. 불과 30여 년 전 우리가 음악을 듣던 모습이다. 20세기 국내 음악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LP는 깔끔한 음질의 CD에 밀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 MP3의 등장과 함께 아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이런 시대에 용감하게도 다시 문을 연 LP공장이 있다. ‘LP팩토리’가 그곳이다.
LP팩토리 이길용 대표(40)는 사실 공장 운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지난 2011년 10월 김포시 대곶면에 LP공장을 차리기 전만 해도 이 대표는 내로라하는 공연기획사에서 ‘지산록페스티벌’, ‘에릭 클립튼’, ‘Maroon 5’ 등의 해외 뮤지션의 내한공연과 국내 유수의 록 페스티벌을 총괄했던 공연기획자였다.
그런 그가 마지막 LP공장이었던 ‘서라벌 레코드’가 폐업한 지 9년 만에 LP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특별한 사업계획이나 전략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객기’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수년 동안 공연 기획 일을 하면서 차츰 일에 대한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이 대표는 문득 음반 제작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공연이 뜸하거나 공연 기획이 재미없어지거나 할 때면 간혹 공부 삼아 음반 제작을 하기도 했던 이 대표는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와 술잔을 나누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갔던 사업 아이템이 바로 LP였다고 한다.
이미 LP는 미국과 일본에 각각 450만장, 30만장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데다 한류 열풍으로 해외 시장 공략 가능성이 충분했다.
더욱이 자신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LP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그 날로 벨기에 LP공장 ‘비닐리움’에서 LP제조기계를 들여와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공장을 열었다.
이 대표는 “처음 공장을 열 때 어떻게든 기계만 작동시키면 바로 LP를 찍어낼 수 있을 줄 알았다”며 “믹싱부터 원료, 작업장 내 온도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 실제 제작까지 많은 난관에 봉착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LP와 관련한 국내 기술자와 서적이 전무했던 환경에서 이 대표는 현지 기술자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기 위해 1천∼2천만 원에 달하는 이전비와 체류비도 감내해야 했다.
이미 기계 구입과 공장부지 구입 문제로 5억 원의 사제를 턴 뒤였기 때문에 자금 여력이 많지 않은 상태였지만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술 이전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독일 현지 염료와 국내 염료의 성분과 농도가 제각각 이어서 사실상 현지인도 방도를 찾지 못해 일주일 이상 아무런 작동도 하지 못한 채 시간과 비용만 소비하고 있었다.
결국 이 대표는 더 이상의 이전 비용 투입은 불필요하다는 판단에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면서 기술을 습득하는 방법을 택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봐도 현재 LP를 찍어내는 공장은 일본에 1곳과 여기 이외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관련 기술자는 물론 이에 대해 아는 사람조차 없어 스스로 터득하고 깨쳐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죠.”
별다른 수입 없이 수개월째 이어진 시험 가동만 반복하다보니 서서히 직원 인건비와 원자재 값, 공장운영 자금 압박이 들어왔다. 이 대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전세방과 아끼던 외제 승용차 등을 판매한 돈과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고스란히 공장에 재투자했다. 심지어 자신이 몸담았던 공연기획사에서 ‘레이디가가’의 공연을 한다며 이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 수고비 명목으로 받은 2천만 원의 돈도 직원 인건비와 운영 자금으로 넣기도 했다.
▲성공 비결? 특유의 뚝심 그리고 인내
이 같은 어려움에도 이 대표 특유의 뚝심과 인내로 결국 제조 과정의 국산화에 성공, 패티김 헌정 앨범 1천장 판매를 시작으로 이승열, 김광석, 장기하와 얼굴들 등의 앨범을 한정판으로 생산해 전량 매진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아시아에는 LP공장이 저희 빼고 일본에 딱 한 군데 밖에 없다. 일본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에서 찍어왔고 이제 그런 걸 한국에서 찍을 수 있어 LP팩토리가 가격 경쟁력 면에서 우세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LP가 다시 대중화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LP를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 보급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했다. 하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턴테이블 대부분은 50만∼100만 원대에 판매되면서 원가 대비 거품이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최근 이 대표는 중국에서 5만∼20만 원대 저가에 턴테이블을 제조하는 중국 업체를 방문 국내에 LP와 함께 저가 턴테이블도 공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파 인증 문제와 관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고 있지 못하지만 LP시장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LP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들을 수 있는 하드웨어가 마땅치 않아 시장에 한계가 있죠. LP가 고급문화가 아닌 대중문화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LP팩토리의 미래를 묻자 그는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갓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욕심 부리지 않고 500장 정도 한정판 위주로 찍으려고 합니다. 막강한 국내 물류를 토대로 일본과 대만에서도 주문받아 수익이 많아지면 사비를 털어 재능 있는 음악가들의 LP를 찍어주고 싶습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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