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살아 있는 역사 등단 50주년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황구라’ 황석영(70)을 만나기까지 사계절을 기다려야 했다. 긴 기다림의 이유는 인터뷰 거절이 아니었다. 그는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쓴다고 했다. 그래서 방해하지 않았다.
꼬박 7개월 동안 매일 원고지와 씨름한 작가가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자음과모음刊)를 들고 나타났다. 지난 11월 28일 서울 논현동에서 작가를 만났다. ‘입심’이 대단했다. 역시 ‘황구라(황석영의 별명)’다웠다.
베트남 참전ㆍ방북ㆍ수감생활
70년 인생이 한국 근현대사 ‘타임캡슐’
칠순의 황석영은 짧은 스포츠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아직 볼만하지?(하하) 누가 날 보고 칠십이라고 믿겠어. 요즘 유행하는 100세 시대 계산법으로 칠십이란 나이를 계산해보면 이제 마흔 아홉 살인데, 마흔 아홉으로 보이지?(하하) 요즘도 꾸준히 헬스하고 있어. 중학교 때 수영반, 고등학교 땐 등산반에서 활동했으니 건강 하나는 걱정 없지.”
마흔 아홉이라 하기에 충분한 여유로움과 건강함이 매력적이었다. 작가 이마에, 눈과 입 주변에 세월을 안고 뿌리내린 깊은 주름만이 그의 나이 ‘70’을 짐작케 했다.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설가 황석영. 그의 반세기 삶은 파란만장했다. 자퇴와 가출, 자살시도, 막노동 떠돌이 생활, 베트남전 참전, 방북, 해외체류, 수감생활 등 그의 삶은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해 왔다.
황석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격동의 시대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그릇’인 것이다. 그는 당대 역사의 큰 물줄기 속에서 단 한 번도 직면한 현실을 피하지 않고 맞서며 주옥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글 감옥에 50년을 갇혀 살아온 그가 느낀 50년은 어떤 세월이었을까?
뭐든 한 분야에서 10~20년을 하면 달인 소리를 듣는데 글쓰기는 달인이 없구나 싶어. 작가로 반세기를 살았으니 지금쯤이면 이야기가 술술 튀어나와야 하는데 이번 작품 쓰면서도 애먹었어. 내 별명이 ‘황구라’지만 쉽지 않았어. 하루에 10매씩 썼는데 어떤 날은 하루에 열 시간씩 품을 들였다니깐.”
반세기 문학인생을 되돌아보면 개인 황석영의 삶이 단 한 순간도 평범했던 적은 없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두 번의 전쟁을 겪었고 근대화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으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는 것.
“지금까지 변화의 과정을 크게 3번 겪었어. 베트남전 참전과 광주 민주화항쟁, 마지막으로 방북사건과 감옥생활로 정리할 수 있지.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 1974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돌입해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 전반기 문학은 비판적 리얼리즘이 두드러졌어.”
초창기 황석영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장길산’. 1974년 7월부터 1984년 8월까지 일간지에 연재한 ‘장길산’은 그가 서른 두 살에 시작해 마흔 두 살까지 딱 10년 동안 쓴 작품이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이후 최대의 민중 역사소설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한국 민중의 정신사를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작가의 삶을 추적하다 보면 그의 얼굴에 생긴 주름의 개수를 가늠케 한다.
“1989년 방북해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해 방북사건으로 7년형 선고받았어. 1998년 사면 석방됐고. 그 후 장편 ‘오래된 정원’, ‘손님’,‘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를 발표했어.
그러고 보니 지난 10년 동안 여성의 눈으로 소설을 썼네. 방북으로 5년간 감옥에 있다 나온 뒤 작품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 수감 생활 후엔 다양한 서사를 실험적으로 도전했고. 내가 ‘황구라’가 돼서 미안하네. 내가 한 번 이야기 하면 끝이 없어.(하하)”
대하소설을 써도 충분할 만큼 방대한 그의 70년 인생을 단 몇 마디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진정한 압축의 미를 보여준다.
여인의 입을 통해 모자이크 벽화처럼…
구한말 신통방통 이야기꾼, 이신통의 일생
최근 펴낸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의 주인공 이신통은 중인 계급 출신의 이야기꾼이자 동학 혁명가인데 격변하는 한반도에서 평생 소설과 사회운동을 병행해온 황석영 자신과 여러모로 닮았다.
작가는 이번 장편이 반세기의 글쓰기를 결산하는 작품이라 했다.
‘이야기꾼’으로 살아온 황석영이 이야기꾼의 일생을 쓰고 스스로의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집필한 ‘여울물 소리’는 어떤 이야기일까?
“소설의 화자는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 ‘박연옥’이 중인의 서얼로서 신분의 한계를 알고 세상을 떠돌게 된 이야기꾼 ‘이신통’을 찾으러 다니면서 줄거리가 이어져. 화자의 추적을 통해 전기수, 강담사, 재담꾼, 광대물주, 연희 대본가, 그리고 나중에 천지도에 입도해 혁명에 참가하고 스승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꾼의 일생 스토리야.”
특이할만한 대목은 소설이 연옥의 입을 통해 모자이크 벽화처럼 이신통의 행적이 드러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는 점.
그리고 연옥은 이신통에 대한 연정을 한평생 마음속에 품고 원망하기보다는 그리워하며 인내하는 우리네 전통적인 여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라진 그를 찾기 위해 직접 그의 행적을 따라 길을 나설 정도로 당찬 면모를 보여준다.
반면 작가의 아바타, 이신통은 ‘나쁜남자’ 스타일이다. 작가는 나름 변명(?)한다.
“글을 읽는 솜씨가 신통방통하다 해서, 본명 ‘이신’이라는 이름보다 ‘이신통’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 이 인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 우리 근대가 포스트모던이라는 풍속 속에 들어와 있지만 내면엔 사실 근대의 상처와 억압이 있다. 이신통을 나쁜 놈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당시 민족의 생존법이 그랬다.
농민운동, 의병, 식민지 시대의 징용, 전쟁을 겪으며 피치 못하게 이신통과 같이 떠나는 남자들이 부지기수였어. 가족이 해체되는 게 사실 빈번한 것이 근대지. 감옥에 가고 망명을 하기도 했던 나는 그런 면에서 이신통을 닮은 것 같다. 회한이 있기도 하다. 작가 50년 동안 가장 큰 회한이라면 가족을 지켜내지 못한 거. 피치 못할 나쁜남자의 전형이었지. 앞으론 말 잘 들으며 살겠습니다.(하하)”
이신통처럼 작가도 집에서 카리스마가 넘치는지 궁금했다. 작가의 일상은 반전이었다.
“카리스마는 무슨. ‘황구라’ 말고 별명이 또 하나 있어. 뭐냐면 ‘억울한 사슴’이야(하하). 나는 여성들한테 굉장히 잘해. 취사, 요리, 설거지도 잘하지. 싱크대 닦는 것도 잘한다고. 하긴 무명작가 시절에 글 쓴다고 하면 다들 웃던데. 그리고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날 보고 “권투하세요?”, “책은 더러 읽으세요?” 했었어.(하하) 날 신통치 않아 했던 거지.”
만년문학 시작…앞으로 10년, 중단편 쓰고파
톨스토이처럼 수염 기르고 싶어…
작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피난 갔던 얘기를 쓴 ‘집에 오는 날’이라는 작문이 전국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고 처음으로 글로써 칭찬을 받게 됐다.
그는 ‘작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 다음에 커서 작가가 되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들이 의사가 되길 원했던 어머니는 황석영이 학교 간 뒤에 방을 검사하고 원고와 노트를 아궁이에 처넣은 적도 있었다 한다. 그런 소년이 반세기를 대한민국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성장했다.
2013년, 황석영은 만년문학을 위해 다시 원고지 앞에 앉았다.
“‘만년문학’을 하고 싶다. 작가에게 만년이란, 조화롭고 평화로운 예술 시대가 아니다. 더욱 심화된 청년기 격동과 갈등이 은폐돼 있을 뿐이지. 따라서 청년기 때의 중단편 소설을 써보고 싶어. 그러면서 젊은이와 함께 가치가 전도된 이 사회, 당대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쓰고 싶어. 그리곤 80~90세에는 놀러 다닐꺼야. 톨스토이처럼 수염도 기르고 싶은데 난 수염이 없어서, 수염을 심을까봐.(하하)”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 황석영은 늙지 않았다. 작가는 지금도 한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년문학을 위해 불꽃같은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야기 보따리는 끝나지 않았다. 다시 시작이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