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친선대사 김혜자]"굶주림 에이즈로 죽음 내몰린…가난한 땅 아이들을 잊지 마세요"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함께 일하면서 정말 수없이 많은 어린이들과 이웃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운명 앞에 아무런 힘도 없었어요. 아이들이 선택한 운명이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어려운 곳에 태어난 것일 뿐이에요. 먹을 것이 없어서, 아주 간단한 약이 없어서, 더러운 물 때문에 소중한 생명이 죽어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에게는 불쌍하고 힘없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줘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행복해질 때 우리들의 삶 역시 진정한 행복을 누릴 거에요”

공존이란 이같이 어려운 이웃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는 탤런트 김혜자는 엄마의 따스한 미소와 함께 특유의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갔다.

■월드비전 ‘사랑의 빵 캠페인’이 나의 삶 바꿔

김혜자는 지금껏 이어가고 있는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는 정말 크고 놀라운 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월드비전의 사랑의 빵 캠페인”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사랑의 빵 캠페인은 한국전쟁 이후 다른 나라에서 도움을 받던 한국이 작은 동전들을 모아 지구촌에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돕자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김혜자는 그렇게 모인 작은 동전의 기적은 정말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함께 하며 사랑의 빵 캠페인을 열심히 홍보하고 나눔에 동참하기를 호소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 국민이 모은 사랑의 동전을 전달하기 위해 에티오피아에 직접 갔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 앙상한 팔뚝, 입 주변 가득 파리가 앉아 있는데도 힘이 없어 쫓아내지도 못하는 아이,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늘어져 있는 아이 등 굶주림의 실상은 정말 처참했다는 것.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일을 직접 목격한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첫 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 같은 현실을 널리 알리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해 주기를 간절히 부탁했다.

그의 간절함에 많은 국민들이 다행히도 공감해 주었고, 사랑의 빵 캠페인은 물론 아프리카 아동을 돕는 일에 관심과 나눔을 실천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그는 정말 기뻐했다.

김혜자는 “내가 하는 일, 그리고 월드비전이 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뿐”이라며 “지구촌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풍성한 삶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작은 선행 하나가 한 가정을 행복하게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은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냐는 질문에는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없는 만큼 만났던 모든 아이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한 가지를 굳이 이야기 하자면, ‘에이즈에 걸린 엄마와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남편에게도 버림 받은 엄마는 에이즈에 감염돼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병에 걸린 엄마를 초등학교 1학년 남짓 되는 큰 딸이 돌보고 자기 보다 어린 동생 밥을 챙겨 먹이고, 집안 일을 도맡아 했다.

엄마는 변변한 약도 없이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눠준 사탕 하나에도 금방 밝은 웃음을 보일 정도로 딸들은 너무 해맑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가만히 지켜만 보고는 있을 수 없었다.

그 가정을 위해 엄마를 에이즈 치료를 받게 했고, 소득이 생길 수 있도록 닭을 지원했다.

또 큰 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방법도 찾았다.

이같은 지원을 하고 일년이 지난 시점에 그 가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지을 수 있게 됐고, 앞마당에는 집안의 수입원이 될 수 있는 닭들이 뛰놀고 있었다.

해맑던 딸아이들은 더 밝고 맑은 웃음을 짓게 됐다.

아이들은 엄마가 나아서 그리고 이렇게 일어나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의 하나였다.

■아프리카에 기본적인 것 너무 없어

해외 봉사활동에 비해 국내에서 봉사활동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혹시 국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우리 아이들인 만큼 국내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저서를 통해 나오는 인세의 경우는 전액 국내 아이들의 공부방 운영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확실히 해외 아동들을 위한 활동이 많다는 그.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은 없고, 나라뿐 아니라 많은 기관들이 국내 아동들의 복지와 꿈을 위한 정책들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아프리카에는 그런 것 이전에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 마실 것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그는 “먹지 못해 피부가 썩어가고 고통에 괴로워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그는 “10세도 안된 어떤 아이들은 50달러 때문에 잎담배를 말기도 한다”며 “그 아이들은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한다. 그 아이들은 노예처럼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절대 그런 말 못한다는 그는 “아이들은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 새르보며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들에게도 그런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눔은 내가 행복해지는 일

김혜자는 이 같은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 자체가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우선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며 “과거에 나와 내 가족이 중심이었다면 지구촌 아이들을 만나고 또 그 아픔을 목격한 뒤에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그 아이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함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 봉사활동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나눔은 정말 나의 삶이 변하는 내가 행복한 일이라며 그 기쁨은 직접 경험해 본, 즉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솔직히 처음에는 힘들 것”이라며 보통 처음에는 일시적인 활동을 해야 하니까 어려운 일보다는 쉽고 단순한 활동 밖에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봉사라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할까라는 기대는 반복되는 단순 업무로 인해 ‘내가 이걸 하려고 여기까지 왔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나도 그랬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점점 그 단순한 일이 재미가 생겼다”고 했다.

작고 단순한 일이 점점 습관이 되고, 그런 일을 하면서 다른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나의 이 일이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한번 해 보세요’라고 말씀 드리기 보다, 이미 실천하신 분들을 칭찬해 드리고 싶다”며 “거창한 나눔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다가 모금행사에 주머니 속의 잔돈을 기부하셨더라도 박수쳐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 조건없이, 그저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 주신 많은 분들이 한국에 매우 많다는 그는 이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이 사람들은 돈이나 자신의 자유로운 시간보다 이웃을 돕는 기쁨을 더 우선적 가치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라며 “그런 분들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사회를 견고히 하고 사회적 불신감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나눔도 많은 사람들이 하면 마치 파장처럼 번져나갈 수 있다는 김혜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마지막으로 향후 남은 삶은 어떤 식으로 세상과 공존을 꿈꾸는지라는 질문에는 “거창한 계획이 있지는 않다”며 “다만 이제껏 해왔듯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음을 다해 할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한다”며 “‘모든 어린이들의 풍성한 삶’이라는 월드비전의 비전처럼 지구촌 모든 어린이들의 풍성한 삶을 꿈꾸며, 그 꿈이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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