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DJ 이숙영]"아픔을 서로 안아주는 '숙제'아닌 '축제'의 해 함께 만들어요"

겨울비가 내리는 금요일 저녁, 골드원피스에 골드스팽클가방을 든 긴 생머리의 여인이 카페로 걸어 들어온다. 그녀의 손엔 마법천자문 캐릭터가 그려진 녹슨 노란우산이 들려있다. 반전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반짝이는 금빛 물결인 이 여인의 정체는 뭘까. 27년째 아침 라디오 DJ로 활동 중인 방송인 이숙영씨다.

KBS 입사 직후 10년 동안 ‘FM 대행진’을 진행했고 1994년 프리랜서를 선언 후 1996년 SBS ‘파워 FM’으로 옮겨서도 그녀는 아침방송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는 중년이 됐다. 허나 그녀는 중년이길, 아줌마이길 철저하게 거부한다. 아직도 10대의 호기심으로, 20대의 정열로 하루 하루를 축제처럼 살고 있다. 파워넘치는 그녀에게 전수받은 2013년 ‘공존기(共存氣)’를 공개한다.

-와! 오늘 드레스코드가 ‘골드’네요. 특별한 날인가 봐요.

사실은 인터뷰 끝나고 오랜만에 편한 선ㆍ후배들과 만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어요.(하하)

비싼 것은 못 사도 평소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옷 사는 거 좋아해요. 벌어서 옷에 투자 많이 해요.

-오늘처럼 늦은 저녁 약속이 있으면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힘들지 않으세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요. 조간신문 보고 아침 먹고, 6시에 방송국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준비하죠. 워낙 잠이 없는 체질이예요.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자나 봐요. 낮잠도 안 자는데 별로 지치는 법이 없어요. 체력 하나는 겁나 좋죠.(하하) 요즘도 주1회 살사댄스, 주2회 줌바댄스로 체력 단련하고 있어요.

-아침형 인간이네요. 27년째 남보다 이른 아침을 맞는다는 것, 힘들 법도 한데요.

초등학교 때도 새벽 3시에 일어나 공부했을 정도로 잠이 없는 편이니 아침 방송 DJ로는 딱 맞는 체질인 셈이죠.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마음 속으로 그럽니다. “오늘도 축제가 시작됐구나. 행복의 기차를 타보자”. 마음 먹기 따라서 축제가 될 수도 있고, 숙제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 새벽에 아침을 챙겨 먹을 정도면 굉장합니다.

아침은 꼭 먹어요. 홍삼, 야채쥬스, 오메가3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죠. 많이 먹는 것은 아닌데 몸에 좋은 것은 많이 챙겨 먹어요. 섭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아프면 좋은 목소리도 안나오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氣)를 줄 수 없잖아요. 특히 감기 걸리면 안 되니 각종 비타민은 꼭 챙겨 먹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방송계에서 아침 라디오 방송을 27년째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27년을 청취자들과 공존할 수 있었나요.

다행이 제 목소리가 아침에 잘 맞고 활기차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활기차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자세에서 비롯되는데, 죽음을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삶이 치열해 질 수 있어요.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 미워할 것도 없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고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오늘 죽고 내일 아침 부활한다’는 신념으로 살다보니 어느새 27년이네요.

-장수 DJ이지만 봄ㆍ가을 개편 때마다 마음 고생좀 할 것 같은데.

불안하죠. 오래되다 보니 젊은 PD들 입장에서 내가 좀 어렵기도 하고 클레임을 걸 때도 있어요. 전체회의에서 ‘너무 노후된 거 아니냐’, ‘새로운 사람이 필요할 때 아니냐’ 그런 의견들이 나오기도 하죠. 그래서 항상 낙하산을 준비하고 낙법을 준비하고 있어요.(하하) 나는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항상 양지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낙법이라면.

이숙영도 사람인데 왜 저라고 불안하고 우울할 때가 없겠어요. 저 스스로 에너지가 없으면 청취자들은 예민하게 다 알아채요. 늘 버티자, 극복하자, 견디자, 나는 할 수 있다 등 자기 최면을 걸죠. 하루에 임하는 자세가 곧 마음 수련입니다.

-항상 낙법을 준비하곤 있지만 SBS의 간판, 이숙영의 ‘파워FM’ 20년 대기록이 얼마 안 남았다.

1996년 SBS 개국 때부터 시작했으니 3년 남았네요. 이왕이면 20년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 프로를 20년 동안 진행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죠. 그걸 바라고 있어요.

-만약에 “이숙영씨, 이번 프로그램 개편됩니다. 그만 하시죠.” 그런다면, 어떨 것 같아요.

열심히 하되 집착은 안합니다. 프리 선언 후 독립군이 됐고 내가 노력한 만큼 평가는 받지만 지금도 언제 짤릴지 모르잖아요. 보너스도 없고 퇴직금도 없고. 개편철마다 백수로 돌아갈 수 있는 신분이기에 걱정도 되고 두려움도 있죠. 그럴 때마다 욕망을 구조조정하자 마음 먹어요. 승용차 탈 형편이 안 되면 전철타고, 비싼 헬스클럽 못 가면 김밥 사들고 등산 가서 즐기는 거죠.

-욕망을 구조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원래 성격이 낙천적인가요.

아니요. 허무주의도 있도 대책없이 밝은 성격은 아니었어요. 20대까지는 경쟁에 굉장히 민감했어요. 초딩 때부터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면서 간접경험을 통해 잘 살아겠다. 좋은 대학 가야겠구나 생각했고 1등 놓치면 무척 힘들어 하는 스타일이었죠. 노력과 극복의 결과인 듯 해요.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늙는 것 밖에 없더라구요.

-경쟁 프로가 있다면.

두시 탈출 컬투쇼 잘 듣고 있어요. 컬투의 타고난 예능감이 부럽기도 해요. 워낙 여성성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예능이나 방송을 하는데 방해가 되더라구요. 소녀 같은 감성이 많고 여린 성격이라 잘 망가져지지 않더라구요.

-라디오에선 톡톡 튀는 언변에, 장난꾸러 같은 면모도 많이 보이던데.

장난꾸러 같은 면은 있지만 아줌마적인 기질은 전혀 없어요.(하하) 정신 속에는 싱글의 정서가 아직 많아요. 그래서 아줌마들과는 대화가 잘 안 통해요. 정말 진부하지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독서와 영화보기예요.

-두 딸의 엄마인데 왜 아줌마를 거부하는 거죠. 공주병인가요.

딸들은 엄마같은 엄마를 원하지만 저는 친구같은 엄마에 속해요. 항상 머물지 않는 젊은 제 영혼이 방송에 티가 나는 것 같아요. 젊음은 물리적인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하죠. 나의 방부제는 ‘호기심’과 ‘열정’이고. 40~50대의 원너비가 되고 싶어요.

-중년에도 ‘호기심’과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건 솔직히 경제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닌가요.

부모님께서 두 분 다 의사였기 때문에 등록금 걱정은 안했어요. 경기여고, 이화여대 졸업하고 아나운서 시험도 첫 도전에 합격했죠. 실패나 좌절의 경험이 없어서 강연하러 가면 오히려 마이너스에요. 누구한테 감동을 줄 수 없으니 말이죠. 거꾸로 스토리 있는 인생이 부럽기도 해요. 요즘은 마이너스 스펙이 중요한 시대면서 마이너스 스펙을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관건이고 곧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20대는 상처도 진주죠.

-2013년 계획과 경기도민들에게 필살기 하나 전수해주세요.

여름쯤, 이성 간에 끌리는 대화법(가제)에 관련된 책을 출간할 예정이에요. 오늘이 내가 남아있는 날에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이 내 인생의 절정이다라는 생각으로 살고 싶어요.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깐요.

죽으라는 법은 없어요.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뜻의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이 좋아해요. 세끼밥 밥 먹는 것이고 1원 한 푼 못 갖고 가는 것인데 건강을 키우면서 때를 노려야겠죠. 무엇보다 2013년은 서로 도와서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해’가 되어야 해요. 방법은 간단해요. 마이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서로 안아주면 됩니다. 우리 모두 숙제가 아닌 축제같은 2013년을 위해 화이팅해요.(하하)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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