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시작 인생' 보여주는 임병호 시선집 ‘가을빛 안개’

“詩가 쉽게 써지는 날은 세상 보기가 미안하다./그래도 詩가 안 써지는 날은 인생이 허무하다.’

임병호(65) 시인의 작품 ‘虛無祭(허무제)’의 일부다.

늘 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시인의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그의 시작(詩作) 인생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선집(詩選集)이 나왔다.

최근 ‘임병호 시선집 간행위원회’는 임병호 시인의 작품 108편을 ‘神의 거주지’와 ‘봄비는 내리고’ㆍ‘잃어버린 노래’ 등 총 6부로 나눠 담은 ‘가을빛 안개’(에이제이 刊)를 출간했다.

수원에서 태어난 시인은 1975년 첫 시집 ‘幻生(환생)’부터 2010년 ‘겨울강가에서 봄을 만나다’까지 총 14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한국문인상과 한국예술문화상, 올해의 경기문학인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이자 (사)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장 겸 수원시인협회장, 경기일보 시사편찬실장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간의 작품을 골라 엮은 이번 시선집은 1965년 ‘시향’과 ‘화홍시단’ 동인으로 문단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지역 문단의 중심에서 50여 년간 활동해 온 시인의 문학적 무게와 깊이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시가 갈 길을 일러 주었다’는 그의 작품에서는 순수한 감성의 시인의 모습부터 풍파를 극복해나가는 한 평범한 사람의 깊어가는 시각을 읽을 수 있다.

표제작 ‘가을빛 안개’를 비롯해 어머니를 그리는 절절한 심정을 표현한 ‘분꽃’, 열정과 희망이 있는 삶의 자세를 예찬하는 ‘어느 행복주의자의 명상록’ 등이 그러하다.

소박하거나 직설적인, 때론 감미롭거나 애달픈 각각의 시어들이 가족애처럼 보편적이어서 진부할 수 있는 소재마저 진한 감동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소재는 술이다.

시인은 작품을 통해 “영혼이 목마른 탓”에 술을 찾는다고 토로한다. 수원 화홍문 언덕과 청계리 농촌주택 현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함께 한 이들의 애잔한 삶을 시로 어루만진다. 참 좋은 술친구다.

수원에 중심을 둔 문인 활동을 확인시켜주듯이 시대적 변화와 지역성을 드러낸 기록성 짙은 작품도 그의 시작 인생의 특징이다. 30여 년 전,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역사적 의미를 서사적으로 풀어낸 ‘아, 수원華城’이 그 예다.

김대규 문학평론가는 이 같은 임 시인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시와 삶과 사람’이 삼위일체로 어우러진 시인의 이상형”이라며 “시와 인생의 본질을 감지한 시인의 영혼의 노래”라고 평했다.

이와 관련 임병호 시인은 “평소 시선집은 시인 사후에 발간돼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지만 문우들의 권유를 따르게 됐다”며 “시의 이론보다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염두에 뒀던 나의 문학관을 간행위원이 잘 헤아려 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값 1만5천원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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