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에서 놀자]<20>동두천문화원, 어린이 향토사 장원경시

향토사 익혀 '장원급제'…인성교육ㆍ애향심ㆍ효교육 3마리 토끼 잡는다

조선 중종(16세기) 이후 맑고 소박한 연못이 있다 해서 ‘이담골(伊淡골)’이라고 불리던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이담골이라는 지명을 기억하는 이는 없지만 왜 이담골이라 불렸는지 증명이라 하듯 이 마을엔 생연동(生淵洞), 못골, 방축골 등 연못이나 저수지와 연관지어진 지명을 가진 곳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담골은 과연 어떤 곳일까? 동쪽에 머리를 두고 흐르는 천이 있다는 지금의 ‘동두천(東豆川)시’가 바로 그곳이다.

동두천을 샅샅이 아는 사람이 드물기에 이담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동두천의 과거를 파헤치기 위해 어린이들이 모였다. 지난 11월 21일 동두천시민회관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3회 어린이 향토사 장원경시대회에 참여한 어린이 180여명이 그 주인공. 학교 시험만큼이나 학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장원경시 현장으로 가보자.

 

# 동두천, 내가 제일 잘 알아~

‘덩덩 쿵덕쿵 쿵따쿵따 쿵타쿵~’ 신명나는 사물놀이가 제3회 어린이 향토사 장원경시대회의 막을 올렸다.

동두천 지역의 9개 학교에서 모인 4~6학년 학생들은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갖추고 앉아 풍물패의 공연을 지켜봤다. 이런 와중에도 지난 7월 동두천문화원에서 받은 ‘이담골 역사기행’ 책을 뚫어져라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노란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은 중요한 내용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장원’의 자리를 노렸던 것.

풍물패 공연에 박수갈채가 이어지고서 드디어 시험이 시작됐다. 동두천문화원에서 이사,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이들이 이날만큼은 감투를 버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시험 도우미로 나서 손자, 손녀들에게 시험지, 답안지, 볼펜을 나눠줬다.

시험지를 받는 그 순간까지 아이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시험지를 받아 든 아이 옆에 자리를 잡고 문제를 보니 객관식 20문항, 주관식 6문항으로 구성돼 있었다. 동두천에 미군이 있다는 것만 아는 기자의 눈엔 시험지의 까만 색은 글씨요, 하얀색은 바탕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이 향토사들은 구석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동두천에 대한 역사, 임금님이 떠 마셨다는 ‘어수정’,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송서율창’ 등에 대한 객관식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낸다.

문제는 주관식이었다. ‘소요산 자재암에서 보관하고 있는 1994년 10월 17일 보물 제 1211호 지정된 이 판본은 ~(이하 생략), 이것은?’, ‘닥채 나무를 많이 재배해 종이를 생산하는 부락이라 해 종이골이라 불리다가 (?)로 부르게 되었다’ 등.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을 고민한 끝에 답을 써내려가는 아이가 있는 반면 결국 칸을 채우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40분간의 장원경시가 끝이 난 뒤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동두천 어린이 향토사로서 한 발자국 내디딘 대견한 모습들은 모두 같았다.

최영은양(11ㆍ생연초4)은 “공부를 하면서 어유소장군 등 우리 고장의 역사를 알 수 있어 좋았다”며 “시험이 조금 어려웠지만 장원이 꼭 돼서 상장을 받고 싶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박용철 사무국장은 “학생들에게 지역의 역사 바로 알리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내 고장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 장원경시에 투호놀이까지…재미가 두 배

전통 투호놀이 대회가 시험을 마친 어린이 향토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투호놀이라는 색다른 체험을 통해 전통놀이문화를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학교별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단체전이 진행되는 동안 병 속에 화살이 들어갈 때마다 응원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화살이 바닥에 떨어질 땐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와 응원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개인전은 단체전에 비해 더욱더 치열했다. 향토사 장원경시처럼 투호대회에도 상장과 부상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투호가 일반 백성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놀이였다는 것을 교재를 통해 배운 어린이 향토사들은 책 속의 내용에 실제 체험을 곁들여 자신들만의 실력을 뽐냈다.

왼손잡이면서도 좋은 성적을 낸 김가람군(13ㆍ지행초6)은 “작년에 학교민속놀이체험에서 해봤는데 재밌어서 참가해게 됐다”며 “10개 중 7개가 들어가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라고 즐거움을 전했다.

한바탕 투호놀이를 한 아이들이 떠난 뒤 동두천문화원 관계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이날 치른 장원경시 채점이 시작된 것. 180여 장의 답안지를 채점한 뒤에 순위가 가려졌다. 81점을 얻은 이담초등학교 6학년 이가연양(13)이 장원을 차지하며 시장상을 거머쥐게 됐다. 강민호군(13ㆍ송내초6), 심규혁군(13ㆍ이담초6)이 각각 78점, 71점으로 뒤를 이어 시의장상을, 3위와 장려상을 받은 9명의 어린이 향토사는 동두천문화원장상을 받게 됐다.

# 어린이 향토사 양성, 지원이 절실하다

제3회 어린이 향토사 장원경시대회는 시험도 보고 놀이도 즐기는 일석이조의 대회였지만, 몇몇 아이들에게서는 볼멘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담골 역사기행’ 교재에서 모두 출제됐다는 시험문제 중에서 모르는 것들이 있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제1회, 제2회 향토사 장원경시 때는 시험 6개월 전부터 이창선 신흥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 지역 내 초등학교를 순회 방문하며 향토사를 꿈꾸는 어린이들에게 동두천의 역사부터 역사적 인물, 향토문화유산에 대해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3회째를 맞는 올해는 어린이 향토사 장원경시에 대한 예산 지원이 줄어 교재를 나눠주는 게 전부였다.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진행하지 못해 아이들의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동두천문화원이 지난 2010년부터 어린이들의 인성교육, 지역 애향심, 효(孝) 교육 등을 위해 야심 차게 마련한 행사가 기관, 지자체의 부족한 지원 탓에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현 초등학교 교과과정으로 편성된 내 고장 알기에 한 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동두천에 관한 역사, 문화, 주요사적지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어린이 향토사 교육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이 요구된다.

안민규 동두천문화원장은 “어린이들은 동두천의 꿈나무”라며 “동두천이 다른 지역에 비해 소외된 부분이 있는데 역사 교육을 통해 자부심을 불어넣어 이곳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문화도 복지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동두천문화원의 어린이 향토사 장원경시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