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에서 싹튼 ‘희망과 평화’
일상 되찾은 섬마을 “비극 다시는 없기를…”
인천 연평바다 끝자락에 서면 북이 보인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만큼 망원경으로는 사람이 오가는 것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지구 한바퀴를 돌아 반대편에 닿을 만큼 멀다. 상처가 깊은 탓이다. 가까운 만큼 불안감도 크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일하느라 잊고 지냈지만 이 맘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그날의 악몽이 떠오르네요”
연평에서 꽃게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박춘식씨(43)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포격 이후로는 훈련이 더 강화돼 포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살아가고 있다”며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피폭 당시, 박씨의 집과 창고는 대포를 맞아 불타버렸다. 운이 좋게 앞집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있던 박씨 가족은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씨는 “피폭 2주기가 됐다고 좁은 연평도가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위로를 주고 있어서 감사하다”며 “하지만 연평도에 정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더 이상 그 날의 아픔을 떠올리면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평화와 평온함인 것 같다”고 했다.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미안해질 정도로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올랐다. 떨리는 목소리는 깊은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줬다.
그래도 얼마 전, 가족끼리 단촐 하게 모여 어머니의 68세 생신 축하파티를 했던 일이라든지 꽃게나 조기를 제철마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내어놓으며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됐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피폭사태가 있은 지 어느 덧 2년이 지났다.
연평 지역 주민 안정을 되찾고 평온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포격에 부서졌던 집 32채는 온전히 제 모습을 찾았고 낡고 쓰러져가던 집들도 반듯한 새 집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연평초등학교에는 어린이 10여 명이 비가 살짝 흩날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줄넘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재잘거리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이나 간식을 입에 물고 투닥거리는 것은 여느 초등학교와 다를 바 없다. 한 아이를 불러 춥지 않냐고 물었더니 어깨 한번 으쓱하더니 괜찮다면서 이내 아이들 무리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김광석 연평초 교무부장은 “아이들은 일부러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만 하지 않으면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다”면서 “아직 완벽하게 상처를 극복하고 불안을 떨쳐낸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상담치료를 받는다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밖에는 집집마다 김장을 담글 준비를 하면서 배추를 다듬고 절이느라 분주하다. 족히 100포기는 돼 보일 정도로 양도 푸짐하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김장김치를 해놓는 게 가장 급선무다.
연평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김세영 어르신(74·여)도 요새 가장 큰 걱정거리를 아픈 허리라고 꼽을 정도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김 어르신은 “허리 아프고 다리 아파서 공공근로도 하기 어려운 게 제일 걱정”이라며 “포소리를 들을 때면 아직도 마음속에 불안감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젠 괜찮다”고 초연함을 보였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연평에 제일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이제는 아무 걱정이나 불안함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대통령이 제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평도,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불과 3㎞ 떨어진 섬. 갈도, 장재도, 석도, 개머리 등 북측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섬들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북한과 가까운 곳.
연평 피폭 2주기를 하루 앞두고 북의 도발 소식이 연평도에도 전해지면서 긴장과 불안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평화를 원한다. 평화가 필요하다’
안보관광지로 급부상… 비극 딛고 일어선 ‘평화의 섬’
연평도는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섬은 아니다. 그래도 꼭 한번 다녀가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조금 구불거리는 나즈막한 산길을 따라 10여분을 올라가면 등대공원이 나온다. 소박하지만 정겨운 바다가 있다.
또 제1연평해전(1999), 제2연평해전(2002), 대청해전(2009)과 천안함 폭침(2010), 연평도 포격(2010)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공원도 있다.
동판에 새겨진 얼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춰본다. 괜스레 머리가 숙여지고 마음이 무겁다. 미안함이 밀려온다. 누가 저 어린 병사들을 사지로 몰았을까. 우리 모두의 굴레다.
연평도 피폭 2주기(11월23일)를 맞아 연평도 선착장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인천 해병대 전우회 10여 명, 인천지역 부녀회원 10여 명, 산악동아리 회원 10여 명, 관광객이다.
자신을 해병대 36기라고 소개한 임광조씨(78)는 “지난해에도 연평도를 찾았고 올해 또 연평도를 방문했다”면서 “많이 어렵고 힘들었을 텐데 잘 지내고 있는 주민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대학교 외국인 유학생 견학단 50명도 연평을 찾아 포격현장과 군부대 등을 돌아봤다. 스페인, 일본, 중국 등 유학생으로 구성된 견학단은 이날 인천해양경찰 함정을 이용해 11월21일~22일 일정으로 연평도에서 안보체험을 했다.
스페인 말라가대학 교환학생인 알바로 마르티네즈씨(25·경영학과)는 “한국이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것을 머리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다”며 “더 많은 외국인들이 현장에서 평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평도 피폭 당시 부서진 건물로 만든 안보교육장이 11월 23일 준공되고 섬 동쪽 망향전망대, 섬 서쪽 등대공원 등을 잇는 안보관광코스도 개발되고 있다.
연평도는 분명 제주도처럼 아름다운 섬은 아니다.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시골마을처럼 인심이 후하지도 않다. 2년 전 이곳은 분명 전쟁터와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마을이 복구되고 집이 새로 들어서고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파도소리보다 포소리가 많이 들리는 곳이다.
연평도를 특별한 섬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평화’다.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다. 그들이 주는 ‘용기와 희망’이다.
글 _ 연평도ㆍ김미경 기자 hightop@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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