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호의 보물읽기]장만 초상(張晩 肖像)

장만(1566∼162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인동, 호는 낙서(洛西)다. 전라도와 함경도의 관찰사와 형조판서 등의 벼슬을 거쳐 우찬성을 지낸 문신이며, 말년에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진무공신 1등으로 옥성부원군에 봉해졌다.

문무겸전인 장만은 2점의 초상이 전해지는데, 하나는 단령 차림의 정장관복본(正裝官服本)이며, 다른 하나는 심의 차림의 연거복본(燕居服本)이다.

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있는 정장관복본은 진무공신 책록에 의해 그려진 공신상으로, 113×240㎝ 크기로 진무공신에 오른 후 인조 3년(1625)에 도화서 화원에 의하여 그려진 것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의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화원이 그린 당시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초상화의 특징은 왼쪽 눈에 안대를 차고 있는 모습과 얼굴에 선명하게 보이는 마마자국이다. 기록에 의하면 장만은 오랜 외직 생활로 병을 얻어 실명했으며, 9세때 천연두를 앓은 병력으로 마마자국이 생겼다.

덕망 높은 선비의 연거복본 차림 초상화는 113×253㎝로 당건(唐巾)과 심의(深衣)를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좌상으로 한손은 무릎위에 놓고 한손엔 부채를 들고 있는 우리나라 초상화 중 유래를 찾기 힘든 희귀한 유형의 초상화다. 특히 부채는 학의 깃털을 재료로 만든 것으로 신선(神仙)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두 초상은 장만의 성품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으로서 정장관복의 공신상은 그의 주도면밀하고 엄정한 공직 삶 속에서의 모습을, 연거복본은 속세를 떠나 자연에서 노닐기를 바라는 은사(隱士)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조 인물로서 다양한 복식을 착용하고 초상화를 그린 예는 그리 많지 않으며, 특히 조선 중기 인물로서 반신상이 아닌 전신상으로서 정장관복본과 연거복본 두본 모두 완전하게 현전하는 예는 장만의 초상화가 유일하다.

특히 하나는 왕명에 의해 그려진 공신상이며 하나는 아주 희귀한 유형의 초상화라는 점은 더욱 더 주목되는 문화재다. 이 영정들은 장만선생의 사당인 김포의 옥성사(玉城祠)에서 보관해 오다 최근 보존처리 과정을 모두 마치고 경기도박물관에서 위탁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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