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로 집터 다지는 민속놀이…관람객들도 후끈
■이무술은 왜 집터를 다졌나
‘이무술’은 술도 사람 이름도 아니다. 지금의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의 옛 지명이다. 300년 전 천렵을 즐기던 한 농부가 냇가에서 커다란 고기를 안고 나와 죽은 일이 있었는데 그 고기가 바로 천 년 만에 승천할 이무기였던 것. 마을 주민들이 죽은 이무기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위령승천제를 지내자 그 자리에 난데없이 매화나무 두 그루가 솟아 그 후부터 ‘이매동’으로 불리기 시작했단다.
이 마을에서는 자손을 분가시키거나 새로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닦고 지반을 튼튼하게 다졌는데, 이때 집을 짓는 동안의 안녕과 집은 지은 후의 복록을 기원하기 위해 소리를 내며 작업을 해왔다. 바로 ‘이무술 집 터 다지는 소리’다.
과거 이무술 자연부락 사람들은 주로 밤에 집터 다지기를 했다. 귀신이 밤에 움직인다고 믿어 컴컴해진 뒤에야 궂은 액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때 집주인은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마련하고 지경돌과 횃불을 준비한다. 고사 술상을 준비하고 큰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며 술을 사방에 뿌리고 동네 사람들과 나눠 마신 뒤 횃불을 켜들고 터를 다지기 시작한다. 선소리꾼이 선창하면 지경꾼들이 후렴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경꾼들 말들어라 일시에 들었다 일시에 놓고 힘있게 들었다 힘차게 놓자 한눈팔다간 큰일난다 앞무릎 발등을 조심들 하세” “에이여라 지경이요” “남한산성 나린 줄기 영장산의 힘을 얻어 학의 등에 터를 닦고 온천하에 부귀영화 이 집터에 다 들었네” “에이여라 지경이요”
소리가 고된 작업을 흥으로 바꿔 힘든 줄 모르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게 하고, 마을 사람들의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때부터 이웃들과 집터를 다지는 미풍양속이 이어져 오면서 이매동의 집터 다지는 소리는 특색있게 발달돼 현재 후손들에게까지 전해내려오게 됐다.
방영기 총연출(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전수조교)은 “18대가 이매동에서 쭉 살아왔다. 내가 우리 민족의 얼을 찾기 위해 집터 다지는 소리를 발굴하고 전승한지 30년이 됐다”며 “어렸을 때 할아버지 손을 잡고 이웃집에 따라가 집터를 다지고 쌀 떡국을 먹으며 보고 기억한 걸 그대로 옮겼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후 남한산성유원지 놀이마당에서 펼쳐진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시연행사에는 방영기 총연출과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보존회원, 성남농협주부농악단원, 한국국악협회 성남시지부 회원 등 200여명이 참여해 옛날 모습 그대로를 재현했다.
집터를 다지기 위해 나온 사람들의 복장은 모두 제각각었다. 알록달록 예쁜 한복을 입은 여인부터, 누더기 옷을 입은 아낙네, 광목 그대로를 입은 처자까지. 당시 동네 사람 개개인마다의 생활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경꾼들은 가래줄로 집터를 고르고, 지경돌을 이용해 초지경 다지기를 시작했다. 단연 방영기 총연출의 북소리와 함께 선소리는 빠질 수가 없다. 양산도 타령에 맞춰 초지경을 다지며 옆집 아저씨가 힘들까, 건넛마을 아낙 팔이 아프진 않을까 서로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한참 터다지기를 하더니 고된 작업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마당놀이 한판이 벌어진다. 음식을 담당하는 아낙네들이 지경꾼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고 김치 지짐이 한 조각, 쫄깃한 인절미를 입속에 넣어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그들의 노랫소리는 더욱 커진다.
여기에 지경꾼들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관람객들과 함께 탁주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옛날 그 시절의 정을 불러일으키자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워졌다.
뱃속이 든든해진 지경꾼들은 잠시 일을 내려놓은 채 방아타령을 부르며 흥겹게 춤을 추며 뛰놀고서, 마무리 터다지기 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저기 다지던 지경돌을 다시 중심으로 갖다놓고 지경꾼들도 각자 제 위치로 돌아온다.
집을 튼튼하게 지을 수 있도록 땅이 잘 다져졌다 싶을 때쯤, 지경꾼들은 자손 대대로 만년유택을 누리고, 평생 풍년이 들라는 의미에서 ‘풍년가’를 부르며 작업을 마무리한다. 흥이 절정에 다다른 지경꾼들은 박수를 치고 있는 관람객들을 집터로 모시고 나와 함께 장단을 맞추며 어깨춤을 춘다.
‘이무술의 집 터 다지기’는 품앗이로 집터를 다지며 상부상조하는 동시에 평소 어울릴 수 없었던 이웃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 어려움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공연 내내 함께 춤을 추며 즐기던 박길순씨(64·여)는 “처음으로 이 공연을 봤는데 저절로 흥이 났다”면서 “옛날 것을 복원해서 다시 보여주고 맛있는 걸 같이 나눠 먹으니 어릴 적 생각이 났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최근 신도시가 우후죽순 개발되면서 지역의 향토문화들이 자칫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농촌지역이었던 성남 분당구 이매동 일대 역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면서 그 옛날 이곳에서 불리던 집터 다지는 소리는 다시는 들리지 않게 됐다.
이에 성남문화원은 지역의 사라져가는 민속 예술을 조사·재현하는 민속놀이 보존 전승 사업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이무술 집 터 다지는 소리 시연회’를 이날 세 번째로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판교지역에서 새해 초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 행사인 ‘판교 쌍용거줄다리기’와 지난 6월 선보인 ‘구미동 오리뜰 농악’ 등 성남에서 잊혀가는 민속놀이를 발굴해 후손들이 함께할 수 있는 민속놀이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다만, 옛것을 지키기 위해 성남문화원, 이매동 집터 다지는 소리 보존회 등 지역 민속놀이 분야 전승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은 미비한 지자체 예산 지원과 민속놀이 복원을 시민들의 소극적인 참여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 보인다.
한춘섭 성남문화원장은 “개원 34주년이 된 우리 문화원은 그동안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계승 발전 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며 “도시화의 물결 속에 사라져가는 전통 민속을 보존·전승해 성남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앞장 서겠다”고 밝혔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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