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호의 보물읽기]보물 제1096호 쇄미록(鎖尾錄)

‘쇄미록(鎖尾錄)’은 조선중기의 학자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이 임진왜란 때 홍주(洪州)·임천(林川)·아산(牙山)·평강(平康) 등지를 피난하면서 전란상황과 사회상을 적은 일기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쓴 피난일기가 중심을 이루지만, 일기 곳곳에는 일상의 삶을 살았던 당대인들의 생활 모습도 잘 드러나 있다.

쇄미록이란 ‘시경(詩經)’의 ‘쇄혜미혜유리지자(?兮尾兮遊離之子)’라는 구절에서 딴 것으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나그네’라는 뜻에서 피난의 기록임을 암시하고 있다. 1591년(선조 24) 11월부터 1601년 2월까지의 전쟁 기사는 물론 당시 각 계층의 생활상, 군대징발과 세금징수, 군량운반 등 구체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구성은 1책이 ‘임진남행일록(壬辰南行日錄)’으로 1591년 11월27일부터 1592년 6월까지 노비추쇄를 위하여 충청도·전라도 지방을 돌다가 장수현(長水縣)에서 왜란을 만나 깊은 산중으로 피난간 전말이 서술되어 있고, 2책부터 7책까지는 1593년부터 1601년까지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각 책의 끝에는 교서, 의병 격문, 명장(名將)의 성명문, 공문 등을 수록하였다.

쇄미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희문의 철저한 기록정신이다. 전쟁 속에서도 거의 매일 일기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피난 생활과 조정에서 들은 전황과 의병의 활약상, 각종 제사와 상업 행위, 질병과 치료, 여가 생활 등 다양한 내용들을 모두 담았다.

이러한 기록들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상황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또한 오희문의 관직에 대한 집념, 가문의 영광을 위한 모색, 외가와의 인연, 아들에 대한 기대, 딸과의 친분, 꿈속에 등장하는 가족 등 오희문 개인의 생각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어 한 개인의 일기 기록이지만 당대의 사회상과 그와 함께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유용한 자료이다.

특히 16세기 말 양반층의 농장경영이 노비의 부역노동을 기반으로 농장주가 직접 감독하는 경영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저자 자신이 양반가 출신으로 많은 노비를 거느렸기 때문에, 당시 양반의 특권과 노비의 신공 및 매매·소송·입안(立案) 등의 연구에도 참고가 되는 조선중기 사회사·경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올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꼭 420주년이 되는 해이다.‘쇄미록’에 나타난 420년 전 전쟁의 고난 속에 살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문화재이다.

 

장덕호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