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앤 아츠’ 사업비 7억 빼돌린 혐의…인천지검, CMI코리아 본사 압수수색
검찰이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의 친형 정모씨(70)가 인천시 등으로부터 받은 보조금 수십억원을 가로챈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인천지검 특수부(황의수 부장검사)는 9월 21일 인천시 등으로부터 받은 ‘인천 앤 아츠’ 보조금 중 40억여원을 챙긴 혐의(사기 등)로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나흘 뒤인 25일 인천지법 김범준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정씨를 상대로 영장실질심사를 벌여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으며, 구속할 경우 방어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정씨가 빼돌린 자금의 행방을 캐려면 정씨의 신병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보강수사를 벌여 이른 시간 내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정씨, ‘인천 앤 아츠’ 인천시 보조금 가로 챘나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008~2009년 인천시와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로부터 지원받은 ‘인천 앤 아츠’ 사업비 중 보조금정산관련 서류를 위조해 7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 앤 아츠’ 사업은 인천시가 인천아트센터 개발사업 등과 연계해 지역 내 각종 공연예술분야를 육성하려고 추진한 사업이다.
검찰은 애초 정씨에 대해 횡령 혐의로 수사를 진행해 왔으나 계약서 자체에 쓰고 남은 사업비를 반납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없어 사기 혐의 등을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 8월말 정씨가 대표로 있는 기획사인 CMI코리아 본사를 압수수색해 정씨가 인천에서 벌인 각종 사업과 관련된 서류 일체와 전표, 회계자료 등 소형트럭 2대 분량의 서류를 확보했다.
이후 검찰은 압수품 중 정씨가 지난 2005년부터 인천시와 공동으로 진행한 ‘인천 앤 아츠’ 사업과 인천아트센터 조성사업 관련 서류 등을 분리하는 작업을 벌였고, 인천시로부터 제출받은 사업 정산 자료와 비교·분석해왔다.
정씨는 ‘인천 앤 아츠’ 사업을 통해 예술고문료와 기획료·진행비 등의 명목으로 받은 12억~15억원 이외에 각종 프로그램 진행비와 홍보비 등 수십억원을 하청업체에 준 뒤 이를 다시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또 수사당국의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여러 명의 계좌를 거치고, 해외 계좌까지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자금이 각종 이권사업의 로비자금 등에 쓰인 것으로 보고 횡령 자금의 사용처 등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미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 같은 첩보를 입수, 계좌추적을 통해 자금의 흐름을 조사하는 등 내사를 벌여 정씨의 범죄사실을 상당 부분 확인했다.
한편 인천지역에서는 CMI가 ‘인천 앤 아츠’ 사업을 맡으면서 인천지역 예술인들을 배제해 지역문화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검찰, 인천아트센터 개발 사업까지 수사 확대
검찰은 정씨가 인천아트센터 조성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이번 ‘인천 앤 아츠’ 사업비 횡령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인천아트센터 사업까지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정씨가 인천아트센터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 등에 100억원 규모의 각종 용역을 몰아준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007년 12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인천아트센터 개발사업을 진행한 특수목적법인(SPC)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친분이 있는 A사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송도ACM 등에 총 83억원 규모의 5개 용역을 발주했다.
정씨는 2007년 12월5일 SPC 설립과 동시에 A사와 33억원 규모의 전체 사업을 총괄하는 사업관리(PM)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정씨는 이튿날 A사 및 송도ACM와 20억6천360만원의 개발자문 및 사업부지 매입대행 자문계약을 나눠 맺었고, 이어 A사에 사업계획서 작성 및 컨설팅 용역계약(5억5천만원)을, 송도ACM에는 사업기획 및 국내외 사례조사분석 용역(16억5천만원)을 각각 발주했다.
또 2008년 10월 A사와 월 8천800만원씩 용역수수료를 지급하는 사업관리 용역 추가계약을 맺었고, 한 달 뒤 A사 및 송도ACM 등과 사전 마케팅비용으로 20억8천900만원을 포함한 임대 및 분양대행 마케팅 용역을 맺었다.
이밖에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로부터 받은 문화단지 사업관리 및 프로그램개발 용역 계약금(5억5천만원) 대부분을 자신의 회사인 CMI코리아에 넘겨줬다.
이처럼 정씨가 A사와 송도ACM 등에 넘겨준 용역 등은 총 100억원 규모로, 이중 90억원이 이미 지급됐다.
검찰은 공공사업을 위해 산업은행 등에서 나온 공적자금 대부분을 정씨 등이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가 A사와 함께 용역을 명분 삼아 돈 나눠 먹기 잔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난 2월 SPC 측이 정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해 현재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씨는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차후 입장을 밝히거나, 법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묘한 사기 수법 ‘비리백화점’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정씨의 사기 행각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가 인천시 등으로부터 받은 ‘인천 앤 아츠’ 사업비 중 빼돌린 7억원은 사업비 중 남은 금액으로 반납해야 하지만, 아예 보조금보다 더 많이 쓴 것처럼 정산관련 서류를 꾸며 관계기관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또 기존 ‘인천 앤 아츠’에 있는 프로그램을 마치 아트센터 개발사업과 관련한 각종 프로그램인 것처럼 꾸며 이중으로 사업비 수억원을 챙기는 등 갖가지 수법을 동원해 모두 4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아트센터 개발사업에서의 용역비 횡령은 더욱 치밀하다.
정씨는 인천아트센터 개발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이 설립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A사와 자신이 대표를 맡은 송도ACM 등에 각종 용역을 무더기로 발주했다.
정씨는 회사 설립일인 지난 2007년 12월5일에 사업관리(PM) 용역을 발주했고, 이튿날에는 개발자문 및 사업부지 매입대행을 비롯해 사업계획서 작성 및 컨설팅, 사업기획 및 국내외 사례조사 등 3건의 용역을 추가로 발주했다.
이미 처음 맺은 사업관리(PM) 용역의 범위에 뒤따른 3개의 용역 내용이 모두 포함돼 중복되는 업무인데도, 이를 세분화해 이중으로 용역을 발주한 것이다.
사업부지 매입대행의 경우 이미 인천시 등과 매입조건이 확정돼 있어서 별다른 일이 없는데도, 정씨는 A사와 송도ACM과 대행업무 용역을 맺어 무려 20억여원을 지급했다.
또 임대 및 분양대행 등 마케팅 용역계약도 임대매출액이 8% 및 분양매출액의 9.5%라는 거액의 분양수수료를 지급키로 하고도, 사전 마케팅 명목으로 20억8천900만원의 용역비를 송도ACM에 지급했다.
검찰 측이 일반적인 임대·분양대행 계약에서 마케팅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밝힌 점으로 미뤄 사실상 정씨가 사업에 불필요한 용역을 마구잡이로 발주한 셈이다.
특히 검찰은 정씨가 대부분의 용역비를 발주와 함께 대부분 지급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통상 용역비는 착수, 중간보고, 최종보고, 결과물 납품 등 진행 정도에 따라 분할 지급한다.
검찰은 정씨가 시장의 관행을 무시하고 사업 진척이 더디거나 용역 결과물이 없는데도 용역비 대부분을 지급한 것에 대해 용역비 중 일부를 다른 곳에 사용하기 위해 발주와 함께 전액 지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정씨가 SPC의 대표를 맡을 때 당시 송도ACM의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법상 자기거래에 해당하고, A사가 받은 용역을 송도ACM 등으로 하도급한 행위는 자기거래 규정을 회피하기 위한 위법 행위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의 행위가 고의적으로 이뤄졌는지, 그리고 이 행위로 SPC 측이 손해를 입었는지에 대해선 법리해석이 필요하다”면서 “우선 SPC에서 정씨 측으로 흘러간 자금의 사용처 추적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_이민우기자 lmw@kyeonggi.com 사진_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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